헌법재판소가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이 장관 탄핵을 당론으로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10·29 이태원 참사에 이어 올해 수해 참사까지 엮어 윤석열 정부의 재난 안전 관리 책임으로 몰아세우려 했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자칫 정권 ‘발목 잡기’ 프레임에 빠지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실 이 장관 탄핵 추진이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추진 과정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국무위원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해당 직무 집행에 있어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어야 하지만 이 장관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배했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민주당이 제시한 이 장관 탄핵소추 사유는 △재난 예방·대응 미흡 △관련 헌법·법률 위반 △유족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국회에서의 위증 진술 등이다. 이 장관이 행정안전부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가능하지만 헌재의 탄핵 인용까지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헌재가 “그 자체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며 각하했던 만큼 이번에도 헌재가 비슷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조응천 민주당 의원조차도 당시 “이 장관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헌재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겠다”며 탄핵 인용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했다.
이 장관 탄핵을 추진할 당시의 정국 상황 또한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았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올해 2월은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자칫 이 대표 ‘방탄’을 위해 이 장관 탄핵 카드를 꺼냈다는 의혹을 받기 충분했다.
여기에 탄핵 정국의 열쇠 또한 국민의힘이 쥐고 있었다. 탄핵 심판 변론에서 이 장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검사’ 역할을 할 소추위원인 법제사법위원장이 여당 소속(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장관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해임건의안 제출 수준에서 그쳤어야 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측근인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제 식구 감싸기’ 프레임으로 공세를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이 장관 탄핵을 무리하게 추진했고 결국 헌재의 만장일치 기각 결정으로 오히려 이 장관에게 법적 ‘면죄부’까지 준 꼴이 됐다.
향후 정치 쟁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의 법정 구속을 계기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관저 이전 과정에서 민간인 풍수지리학자 관여 의혹 등을 집중 부각하며 정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적극적인 대정부 공세는커녕 행정 공백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