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이 글로벌 칩 업체와의 접점을 늘리며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나섰다. 전자장비(전장)로 변모하는 자동차와 미래 모빌리티에 대비해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현대차그룹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에 5000만 달러(약 642억 원)를 투자했다고 3일 밝혔다. 텐스토렌트가 최근 모집한 투자금 1억 달러의 50%에 해당하는 액수로 현대차가 3000만 달러(약 385억 원), 기아(000270)가 2000만 달러(약 257억 원)를 각각 투자했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텐스토렌트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전설적 인물로 알려진 짐 켈러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이번 투자는 현대차그룹이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 최적화한 반도체 역량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자율주행 기술을 실생활에 활용하려면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 기반 AI 반도체가 필요하다. 도로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상황을 자동차가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입력 순서대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별개의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다.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텐스토렌트는 2016년 설립 이후 자체 개발한 AI 관련 지적재산권(IP)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텐스토렌트의 CPU·NPU 설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뿐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에 사용될 맞춤형 반도체를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켈러 CEO는 애플 아이폰에 쓰이는 ‘A칩’ 등 고성능 반도체 설계를 주도했고 테슬라에서도 자율주행 반도체 설계 작업을 이끈 인물이다.
같은 날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회사 퀄컴도 현대차그룹과의 협력을 발표했다. 퀄컴 측은 “현대차와 목적기반모빌리티(PBV)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며 “회사의 최신 스냅드래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칩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PBV는 현대차그룹이 미래 자동차 기술로 점찍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는 분야다. 고객의 요구 사항과 목적에 따라 설계한 맞춤형 자동차다. 퀄컴은 PBV에 혼합현실(MR) 등 고도화한 디스플레이가 적용될 것에 대비해 AI 연산 장치가 탑재된 고성능 칩을 공급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텐스토렌트·퀄컴 등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자동차의 전장화 추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자율주행·전기차 등의 확산으로 자동차가 전자기기처럼 변하면서 반도체 칩 탑재량도 급증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현재 일반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수는 대당 약 200~300개 수준이지만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리면 대당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체제 전환을 위해서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해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이 필수적이다.
반도체의 중요성을 절감한 현대차그룹은 최근 수년간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주요 기업과 손을 잡고 주요 기술의 내재화를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는 2025년부터 인포테인먼트 칩 ‘엑시노스 V920’을 공급받기로 했으며 6월에는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 박재홍 대표가 운영 중인 차량용 반도체 스타트업 보스반도체에 20억 원 규모의 후속 투자도 단행했다. 효율적인 연구개발(R&D)을 위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 부문을 합쳤고 그룹에 반도체개발실도 신설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역시 반도체 공급망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유럽 출장 당시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아일랜드 캠퍼스를 방문해 칩 생산 현황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