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을 둘러싸고 ‘에이징 커브' 얘기가 나온 것은 지난해 4월이다. 개막 2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이 무려 13.50이었다. 시속 145㎞였던 직구 평균 구속이 142~143㎞밖에 나오지 않았다. 에이징 커브는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 능력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기량이 하락하는 현상이다. ‘류현진도 그럴 나이가 됐다’는 말이 돌았다.
안 그래도 내림세인데 긴 공백이 불가피한 부상까지 겹쳤다. 그러자 “복귀가 쉽지 않고 돌아와도 선발 투수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왼손 투수 류현진은 지난해 6월 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고 14개월 간 힘겹고 지루한 재활에 매달렸다.
14일(한국 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와 홈 경기. 승리 투수가 된 류현진이 말했다. “원하던 지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
이달 초 복귀 후 세 번째 등판 만에 챙긴 승리다. 류현진은 5이닝 동안 안타를 2개만 맞았다. 볼넷 2개를 내주고 삼진 3개를 뺏는 동안 2실점했지만 모두 비자책이다. 팀이 11 대 4로 이기면서 류현진은 시즌 첫 승이자 지난해 5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 승리 이후 444일 만의 승리를 챙겼다. 36세 4개월 20일의 코리안 빅리거 최고령 선발승 기록도 세웠다. 종전 기록은 2009년 박찬호(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작성한 35세 10개월 13일이었다.
팀의 3연패를 끊은 류현진은 3년 만의 포스트시즌 등판 희망도 키웠다. 66승 54패의 토론토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3위지만 와일드카드로는 가을 야구를 노릴 만한 위치다. 팀 내 맏형이 ‘지옥의 17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기 MLB 전체 득점 1위의 컵스 강타선을 요리했으니 팀 사기가 진작되는 효과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월드시리즈 마운드도 밟았던 류현진은 2020년 토론토로 옮긴 뒤로는 그해 와일드카드 시리즈 등판이 전부다. 토론토는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류현진은 한창 재활 중이었다.
이달 8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에서 강습 타구에 무릎을 맞고 4이닝(무실점) 만에 교체되는 불운을 겪었으나 류현진은 엿새 만에 정상 등판해 마운드에서 노련미를 뽐냈다. 1회 2사 1·2루에서 댄스비 스완슨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았는데 앞서 1사 때 1루수의 포구 실책이 빌미가 됐던 것이라 비자책 처리됐다. 1회에만 31개의 공을 던지며 진땀을 뺀 류현진은 이후 4이닝을 55개로 막을 만큼 경제적인 투구를 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6.5㎞. 평균은 142㎞를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구석을 찌르는 제구가 돋보였다. 24개를 던진 주무기 체인지업의 떨어지는 각도가 여간 날카롭지 않았다. 탈삼진 3개의 결정구가 전부 체인지업이었다.
“지난 경기부터 모든 구종의 제구가 예전처럼 잘 됐다”는 류현진은 평균자책점을 2.57(3경기 1승 1패)로 낮췄다. 통산 성적은 76승 1세이브 46패다.
지역지 토론토선은 “팀에 무척이나 필요했던 투구를 류현진이 해냈다”고 했고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예전의 모습을 복귀 후 3경기 만에 다시 보여줬다. 그 나이에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류현진에게는 쉬운 일처럼 보인다”고 했다. 류현진은 시즌 종료까지 여덟 차례 더 선발 마운드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