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자리가 없어요. 대기하실 수는 있는데 언제 자리가 난다고 보장하기는 힘듭니다.”
12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 응급실 앞은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대기석이 가득 차 일부 환자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병원 앞은 구급차와 승용차가 엉켜 평소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11일부터 이틀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3800여 명의 조합원 중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필수인력을 제외한 1000여 명이 번갈아 가며 파업에 참여한다고 예고했다. 의사들의 외래진료와 수술은 그대로 진행되는 만큼, 큰 혼란이 빚어지진 않을 것이란 게 노조의 예상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순환기내과부터 신경과, 신경외과, 신장내과 등 필수의료와 관련된 진료과 병동들이 신환 입원을 막으면서 각종 시술과 수술이 취소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시술할 의사가 있어도 입원이 불가능하니 예정된 일정대로 시술을 진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병동 입원 길이 막히니 응급실 병상이 가득차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응급실 병상에 입실한 환자 85명 중 30명이 파업 첫날인 11일부터 이틀째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갑작스럽게 시술 취소를 통보받은 환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쳐 콜센터도 업무가 과중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간호사부터 이송요원, 청소인력 등 일반 병실 근무자 가운데 파업 참여인원이 많다 보니 신환을 받지 못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환자가 몰리고 있다"며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들이 발생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심근경색, 뇌졸중 등은 치료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영구적인 후유장애가 남거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분초를 다투는 급성기 심뇌혈관질환 환자의 경우 심혈관내과중환자실(CCU), 뇌졸중집중치료실 등에 입원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병상수가 제한적이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응급 시술을 해도 입원 병상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중증도가 낮은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거나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상황인데, 파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보니 의료진들도 애를 태우고 있다.
병원 측은 파업이 최대한 빨리 종료될 수 있도록 노조와 적극적으로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병원 곳곳에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 쓴 '환자 및 보호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 붙어 있다. 김 원장은 이 글에서 "노조 파업 기간 가능한 모든 인력과 수단을 동원해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고 진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겠다"며 "향후 교섭에도 성실히 임해 진료 공백을 신속히 마무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의사를 제외하고 서울대병원 본원과 서울시보라매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임상병리사, 의료기사 등 약 3800여명으로 이뤄졌다. 국립대병원 특성상 민간 병원에 비해 예산 운영과 인력 충원 등에 제한을 받다보니 노사 협상이 원활하지 않아 파업이 잦은 편이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작년 11월에도 공공성 강화와 인력 충원 등을 주장하며 사흘간 파업을 벌였다. 올해는 경북대병원도 5년만에 무기한 총파업에 나섰는데 충북대병원, 강원대병원, 울산대병원 등 다른 국립대병원들로 파업이 확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제는 파업의 피해를 환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래진료차 서울대병원 본관을 찾았다는 환자는 "병원 근무자들의 여건이 좋아져야 할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환자를 볼모로 파업을 진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