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병원들은 병을 치료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회진 시간을 놓치면 담당 교수님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조심스러울 때도 많았거든요. 당장 퇴원 이후부터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큰 짐을 덜어낸 기분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둘을 키우는 워킹맘 서경희(41·가명) 씨는 작년 말부터 휴직 중이다. 은퇴 후 광주에 내려가신 아버지(84)가 2년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암 진단을 받으면서 긴 여정이 시작됐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외래 진료는 물론 입원도 잦은데 네 살 손위 언니는 여건이 되질 않아 서씨가 챙길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기 1년 전쯤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로 지팡이를 짚고 생활 중이다. 여러 차례 독한 항암치료를 받느라 기력이 쇠한 탓일까. 4차 항암치료를 위해 종양내과 병동에 입원한 아버지는 밤이면 간호사를 알아보지 못한 채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등 간헐적 섬망 증상까지 보인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돌보기엔 무리인 듯 한데 간병인을 구하기엔 비용 부담이 컸다.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잘 버틸 수 있을 지’ 걱정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단 서씨 가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를 차지했다. 고령 인구 비중이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35년에 30%, 2050년에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들은 한 가지 질병을 앓는 경우가 드물다.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골다공증 등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다 보니 다른 연령대에 비해 허약하고 치료기간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하거나 처방 약물 가짓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많고 입원 기간 중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쉽다. 서씨의 아버지도 3차 항암 치료 이후 폐렴이 생겨 식사를 통 못하더니 급격히 쇄약해졌다. 이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도움이 필요할 정도다.
회사 복직 일정이 다가오자 초조해 하던 서씨는 이틀 전 시니어환자관리팀을 만나고 미소를 되찾았다.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관심이나 있을까’ 불안하던 마음은 식사량, 거동 수준, 섬망 등 아버지의 현재 컨디션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는 전담 의료진이 찾아오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평소 처방받던 약 복용습관을 일일이 바로 잡고 불필요한 처방목록을 정리해준 것도 모자라 ‘병원에서 힘든 점은 없는지, 퇴원 이후에는 누가 환자를 돌볼 것인지’ 질문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씨는 “사회복지사님을 통해 부모님 거주지역에 맞는 요양서비스 이용절차와 방법을 안내 받고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며 “투병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부모님 병원비, 부양비가 버겁고 심적으로도 어려웠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2020년 9월부터 노년내과 전문의와 노년전담 간호사를 비롯해 간호부·약제팀·사회복지팀·재활의학팀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팀을 운영해 왔다. 노년 환자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2년 남짓되는 시범사업 기간 노년 환자의 재원일수와 응급실 내원율, 원내 사망, 30일 이내 재입원 등이 줄어드는 효과를 입증하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 건강관리 개선 연구소(IHI)의 ‘고령 친화 헬스시스템(Age-Friendly Health Systems)’ 우수병원에 등재되면서 올해 6월 시니어환자관리팀이 본격 출범했다.
65세가 넘은 환자가 입원하면 주진료과와 관계없이 ‘임상 허약 척도(CFS)’ 평가가 이뤄진다. 장일영 서울아산병원 시니어환자관리팀장(노년내과 교수)은 “전산 개발팀의 도움으로 △환자의 요구사항 △약제 △정신건강 △거동의 4가지 요소를 신속하게 분석해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맞춤형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인력과 예산 투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진료 효율을 높이고 의료 질을 개선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노인은 여러 장기와 기관에 작용하는 생리적인 저장능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있다. 근육량 감소, 면역력 저하, 요실금, 현기증 등 나이가 들면서 자연적으로 겪는 변화를 일컬어 ‘노인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노년 환자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 간호사가 고위험 노인증후군 유무와 치료 방해 요인 등을 확인해 담당 의료진과 공유하고 약제팀은 처방약물의 위험도를 판별해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 필요 시 정신건강에 맞는 정보 제공과 치료 후 거동 능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한 조기 재활치료도 이뤄진다. 퇴원 이후 돌봄 필요 여부 등을 미리 파악해 지역사회의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는 통합퇴원계획센터도 구축하고 있다.
장 교수는 “현재 중증 노년 환자 비율이 높은 14개 내외과 병동에서 시니어 특화 치료 시스템을 시행 중”이라며 “입원 기간은 물론 퇴원 후에도 건강하고 빠르게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적용범위를 늘리는 한편 다방면으로 최선책을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