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은행 대출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출 증가세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이자에 대한 부담감을 넘어서면서 주택 매수 심리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3조 4027억 원 급증했다. 3조 4380억 원이 늘어난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문제는 아직 이달이 끝나려면 10여 일가량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달 들어 19일까지 은행 영업일이 11일임을 고려하면 가계대출 잔액은 1영업일 평균 3090억 원 정도 늘어났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이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5조 8000억 원 이상 늘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서도 대출 증가 폭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대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상식적인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시중은행 금리는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2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240∼6.725% 수준이다. 지난달 22일 3.9~6.49%와 비교해 하단이 0.34%포인트 뛰면서 4%대로 올라섰고 상단도 0.235%포인트 상승하면서 또다시 7%대를 넘보고 있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만기 1년·연 4.620∼6.620%)도 한 달 만에 상·하단이 모두 0.06%포인트씩 올랐다. 기준금리는 동결이 이어지면서 연 3.5%가 유지되고 있지만 채권시장 상황에 따라 은행채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 달간 은행채 1년물과 5년물 금리는 각각 0.06%포인트와 0.26%포인트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대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증가 부담보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5억 원의 대출(40년 만기)을 받아 연 5%의 금리가 적용될 경우 1년간 내야 할 원리금은 2600만 원 정도인데, 3% 금리를 적용할 때(1930만 원)보다 670만 원 정도 더 많다. 2년 거주 후 이 집을 팔아 3000만 원 정도의 시세 차익만 거둘 수 있다면 취득세 등 제반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남는 장사인 셈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부동산 매매가격전망지수는 104.5로 8월 이후 두 달 연속 100포인트를 넘어섰는데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증가액이 올 들어 처음 2조 원을 넘어선 시기도 8월인 점은 집값 상승 기대감과 대출 증가가 무관하지 않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아울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6연속 동결한 것도 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기준금리가 동결되며 시장에서는 기준금리가 안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출을 확대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현재 대출금리는 대출 수요가 늘어나니까 은행들이 조금 더 높게 받는 형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집값 상승 기대감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내년 하반기 집값이 반등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벌써 바닥론도 나온다”며 “집값은 상승할 테니 금리가 조금 오르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도 “연말까지 가계대출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그 이후에도 집값이 보합 상태가 유지된다면 결국 집값을 떨어뜨려야 빚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