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美와 금리차 확대·엔저 심화에 결단…"양적완화 출구 전략"

[BOJ, 장기금리 1% 초과 용인]
日, 3개월 만에 금리정책 변경
美국채 5% 안팎…금리격차 심화
엔화가치 하락에 물가 압력 가중
마이너스 단기금리는 현행 유지
일각선 "내년초 단기금리도 손질"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장기금리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에다 총재는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장기금리 상한이 1.0%를 초과하더라도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일본은행(BOJ)이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의 상한 폭을 ‘1% 이상’으로 유연하게 열어두기로 한 것은 금융시장을 둘러싼 세계 정세가 복잡하다는 판단에서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를 강하게 억제할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정책 수정 배경을 밝힌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번 수익률곡선제어(YCC) 수정은 올 7월 상한선을 0.5%에서 사실상 1%로 올린 지 3개월 만에 이뤄졌다. 그만큼 시장에서 정책을 손봐야 한다는 요구와 금융 당국의 수정 필요성이 컸다는 이야기다.






◇美 따라 日 장기금리도 상한 턱밑=BOJ가 석 달 만에 ‘YCC 수정’을 다시 들고 나서게 된 데는 미국 국채금리의 고공 행진이 있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최근 5%대로 치솟으며 16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미 국채금리 상승으로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도 지속적으로 올라 최근에는 0.8% 후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7월 수정 당시만 해도 우에다 총재는 ‘장기금리가 1%에 가까워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지만 미국의 금리 상승으로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상한선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고 시장에서는 BOJ가 YCC를 폐지하거나 재수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우에다 총재는 이번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금리 상승이 매우 컸고 일본 금리에도 (영향이) 이르렀다는 게 이번 조치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엔화 가치 하락 역시 정책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고금리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반면 일본은 ‘나 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중심으로 한 통화 완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양국의 금리 격차 확대는 엔·달러 환율의 상승(엔화 약세)을 초래했다. 최근 엔·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50엔을 잇따라 돌파하며 엔화 약세, 달러 강세가 심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여전히 쥐고 있는 만큼 엔화 가치 추가 하락 변수는 배제할 수 없다. 고유가를 동반한 엔저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가계 소비를 비롯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BOJ가 금리 조작으로 장기금리 상승을 무리하게 억제할 경우 추가 엔화 약세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BOJ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에다 총재도 “엔화 약세로 물가 압력이 가중되면 향후 YCC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 영향은 제한적=이번 조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금처럼 미국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일본이 ‘적극적인 금융 긴축’으로 선회하지 않는 이상 시장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발행 완료 국채 가운데 BOJ의 보유분이 50%를 넘는 만큼 BOJ가 금리를 적극적으로 올려 스스로의 이자 부담을 키울 리 없다. 올 3월 말 기준 BOJ 보유 국채는 장부가로 581조 엔으로 최근 1년 동안에만 55조 엔 규모가 늘었다. 실제로 이날 BOJ는 YCC 재수정을 결정하면서도 마이너스 금리 정책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금융 완화책의 큰 틀은 유지했다. 이 같은 전망이 반영되며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9.08엔으로 시작해 150엔을 돌파하는 등 엔저를 이어갔다. 브리즈번시티인덱스의 맷 심프슨 수석 애널리스트는 “엔·달러 환율이 반등했다는 것은 시장이 YCC의 폐지에 베팅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YCC 수정 효과는 이번 주 남은 경제 이벤트에 따라 강약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1일 미국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긴축 장기화’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올 경우 채권금리가 뛰어 미일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YCC 수정 효과와 별개로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연준의 핵심 판단 기준인 고용지표도 11월 3일 발표된다. 연준은 노동시장의 과열이 완화하지 않으면 긴축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라 3일 나올 노동부의 10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 및 실업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집계로는 10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전달보다 크게 둔화하고 실업률은 9월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너스 금리 폐지는 언제=우에다 총재는 YCC 수정을 제외한 마이너스 금리,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등 기존의 대규모 금융 완화정책은 유지할 방침임을 밝혔다. 물가 상승 전망을 BOJ 목표(2%) 이상으로 대폭 상향했지만 안정·지속적인 실현을 전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우에다 총재는 “물가 목표 실현이 전망되는 상황이 되면 YCC 철폐와 마이너스 금리 수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의 대규모 금융 완화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는 질문에 우에다 총재는 "임금 인상과 물가의 선순환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내년의 춘투(춘계노사협상)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에 이어 높은 임금 인상이 실현될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총재는 노동 시장 수급과 기업 실적이 호조라는 점을 감안해 내년 정도 임금 상승을 기대한다면서도 '(선순환에 대한) 완전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은 "이쯤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BOJ가 여전히 “끈기 있게 완화정책을 추진해가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YCC 수정으로 BOJ가 마이너스 금리 폐지 시기 저울질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YCC의 유연화와 물가 예상 상향 조정은 이르면 내년 1월로 시장이 예상하는 마이너스 금리 해제 결정이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메시지”라며 ‘유연화’ 혹은 ‘애매화’로 비칠 수 있는 정책 수정으로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 정책 해제를 시사하고 시기에 대한 자유도도 확보한 것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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