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찾은 대구시 북구 ‘삼성창조캠퍼스’ 내 ‘C랩 아웃사이드 대구 캠퍼스’. 이곳은 삼성전자가 조성한 대구 스타트업 육성 거점으로 스타트업 대표와 직원들이 사무실과 공용 공간을 둘러보고 있었다. 지난해 2월 개소한 대구 캠퍼스는 그동안 1년 간 입주하며 성장했던 첫 기수 스타트업을 떠나 보내고 다음 기수 스타트업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캠퍼스 건물 바로 옆에는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설립 당시 심어져 70년 이상 자란 느티나무가 길쭉하게 뻗어 있다. 삼성 역사의 흔적이 남은 기념비적인 공간이 지역 스타트업 육성의 허브로 재탄생한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스타트업 대표는 “삼성 직원으로부터 지원 계획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니 서울이 아닌 대구에 있어도 사업을 진행하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운영해온 외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를 지난해부터 대구로 확대했다. 대구 소재 스타트업들이 서울로 오지 않더라도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캠퍼스에서 근무하는 삼성 직원 5명이 입주 스타트업 5곳 중 1곳씩 맡아 1대1 밀착 지원을 해준다. 스타트업은 사업지원금, 성장 단계별 맞춤형 컨설팅, 국내외 전시회 참가 등도 지원받을 수 있다.
22일로 개소 1주년을 맞은 대구 캠퍼스는 1년 만에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윈도우 제조 스타트업 ‘뷰전’이다. 이 스타트업의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입주 전만 해도 2억 원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20억 원으로 증가했다. 투자금은 투명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차세대 필름을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활용되고 있다. 뷰전은 삼성전자 지원을 통해 유럽 정보기술(IT) 전시회인 ‘비바텍 2023’,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4’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해외 완성차 업체와 스마트윈도우를 공동 사업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양준호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프로는 “삼성전자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는다는 프리미엄이 스타트업의 투자유치와 사업 추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기업도 지역 벤처·스타트업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포스코가 포항에 세운 ‘체인지업 그라운드’에는 100곳 이상의 벤처 기업이 입주해 있다. 특히 지난해 비수도권 최초의 민관협력형 팁스타운이 세워지면서 기술 기반 유망 창업기업 육성이 더욱 수월해졌다. 또한 에코프로그룹의 기업형벤처캐피탈(CVC)인 에코프로파트너스는 투자 자금 중 70% 가량을 지방 소재 벤처기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이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공들이면서 서울 집중화 문제도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외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3496곳 중 서울에 위치한 스타트업이 총 2359곳으로 67.4%를 차지했다.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비중은 82.3%에 달했다. 벤처캐피탈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거나 개발자를 채용하는 데 차질이 없으려면 서울 중에서도 강남에 입주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투자 업계가 지역 스타트업을 직접 발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스타트업 업계도 지역 내 교류 강화에 공감하고 있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15일 부산에서 동남권협의회 출범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이 지역 협의회에는 현재 350곳 이상 회원사가 활동하며 지역 대표 창업가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김민지 협의회장은 “인구 유출과 지방 소멸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창업가 정신과 연대의 힘을 기반으로 지역 문제 해법을 적극 제시하고 지역 동반성장이라는 최우선 가치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