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성장에 필요한 마지막 퍼즐’
정진아(27) 라이프플래닝연구소 대표는 중장년 근로자를 이렇게 정의했다. 정 대표가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것이 2020년, 그의 나이 23세 때다. 대학생 시절 진로 고민 상담으로 찾은 한국생애설계협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 세대를 대상으로 웹과 앱으로 생애설계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초기 스타트업을 벗어나 중기로 접어든 2023년, 정 대표는 여느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그 때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 이가 라이프플래닝연구소의 중장년 1호 근로자 강광일(72) 영업 이사다. 한 무역회사에서 미주 지사장까지 지냈던 강 이사는 지난해 2월 라이프플래닝연구소에 합류해 고객사 발굴과 기업 영업을 맡고 있다.
“삼고초려해 강 이사님을 영입했죠. 저희가 사용하던 공유 오피스에 2030 청년뿐이었는데, 그 사이에서 노익장으로 활동하니 눈에 띄었어요. 열심히 일하는 걸로 유명했죠. 옆 회사에서 ‘일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냐’ 놀릴 정도로요. 강 이사님 덕분에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고, 실제 매출도 늘었어요.”
중장년의 저력을 확인한 그는 그때부터 중장년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5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중장년 근무자가 4명까지 늘었다. 임직원 8명 중 중장년 근로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벤처·중소기업에 은퇴 중장년 연결
“70세가 넘어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월급을 많이 낮췄어요. 보람을 찾으려고 왔죠. 이 일이 우리나라 중장년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해요.”
라이프플래닝연구소의 강광일 영업 이사와 임호근 운영 이사가 라이프플래닝연구소에 합류한 배경이다. 초기 기업은 아무래도 기업 인지도가 낮고 보수를 높게 책정하기 어렵다 보니 전문가를 채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자리 선택의 기준이 다소 다른 은퇴한 중장년이라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서로의 눈 높이를 맞출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은퇴 중장년이 퇴직 전과 같은 포지션으로, 비슷한 규모의 기업에 재취업하기는 어려워요. 이분들의 경력과 경험이 필요한 곳은 업력 10년 미만의 기업이라고 판단했어요. 제품·서비스는 있지만 회사의 체계가 부족하거나, 비즈니스 확장이 필요한 기업이요.”
스타트업은 보통 기술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젊은 기술 조직이다. 아이디어 실현에서 벗어나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견고한 실적을 내는 일은 젊은 대표나 직원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이럴 때는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전략을 세우며 관련 산업에 네트워크를 보유한 전문가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 대표는 은퇴자가 ‘키맨(Key man)’이 돼 이런 역할을 맡아준다면 스타트업들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에 정 대표는 피봇(pivot·사업 모델 전환)을 감행했다.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하던 생애설계서비스를 올해부터 중장년 세대에 집중하기로 한 것. 그 일환으로 생애설계 관련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는 ‘어테일 에듀’를 출시했다. 또, 벤처기업 대표로서 중장년이 보유한 역량과 경험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자신의 경험이 다른 곳에도 유효할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지난 5월 ‘어테일 워크(Attale Work)’라는 채용 플랫폼도 선보였다. 전문가가 필요한 벤처·중소기업에 은퇴 중장년을 연결하는데 초점을 둔 서비스다. 이 플랫폼을 통해 최근 보험사 지점장 출신 한 은퇴자는 배달 플랫폼 기업의 영업 담당자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또 교육회사 인사관리 팀장 출신 은퇴자는 소프트웨어 개발사 영업 담당자로, 마케팅 영업 이사 경력의 은퇴자는 여행 커뮤니티 영업 기획자로 재취업하는 등의 성과도 나오고 있다.
다른 채용 플랫폼과 다른 어테일 워크의 특징은 무엇일까. 정 대표는 ‘중장년 채용 의사가 확실한 곳’을 모았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았다.
“‘연령 무관’인 채용 공고를 중장년 채용 공고로 제공하는 곳이 많아요. 재취업 의지가 있는 중장년이 해당 공고를 봤을 때 ‘진짜’ 중장년 채용 의지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죠. 저희는 중장년 채용처를 직접 발굴하거나, 대표나 인사 담당자의 동의를 얻어 중장년 채용 의지가 있는 공고만 제공해요.”
은퇴 중장년이 갈 수 있는 여러 재취업처 중 사무직 일자리로만 국한한 점도 어테일 워크의 또 다른 특징이다.
“중장년에게 새로운 기술을 교육하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곳도 많아요. 저희는 사무직 중장년이 과거의 역량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사무직 일자리’로 좁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들의 역할은 단순 연결에 끝나지 않는다. 작은 기업은 자기주도적으로 일할 ‘일당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과거 관리자 역할에서 벗어나 다시 신입 사원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변환 과정도 돕는다는 게 이곳의 차별점 중 하나다. 사전 면접을 진행해 중장년의 긴장을 풀고, 걸어가는 자세, 눈빛, 면접 태도 등 적극성을 표현할 수 있는 비언어적 요소를 함께 연습한다.
“역량이 뛰어나 기업의 대표와 인사 담당자가 서류를 보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정작 면접에서 불합격 통보 받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은 재취업이 간절한데 면접에서 어필을 못 했기 때문이에요. 감을 잃으신 거죠. 얌전하고, 점잖은 모습만 보이면 기업은 ‘우리가 모시고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쉬엄쉬엄 놀러 출근하는 게 아닐까’, ‘2030이 모인 조직에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죠. 저희가 미리 면접을 봐 드리니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뒷방 고문이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20대처럼 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나이보다 ‘역량’ 보는 사회도 필요
중장년이 새로운 일자리에 안착하기 위해 근로자 본인의 노력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사측도 나이보다는 ‘역량’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정 대표는 강조했다. 중장년의 역량과 경험이 재취업으로 연결되는 일은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
“기업에 중장년 인재를 추천하면 나이부터 물어봐요. 예를 들어 50대라고 하면 ‘너무 올드하지 않냐’고 되묻죠. 하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우리 회사도 20대 디자이너가 중장년 이사들과 허물없이 어울려요. 친근하다면 나이 차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듯이 나이라는 숫자보다는 대상 자체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해요.”
피봇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채용 성사 수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중장년 인재 한 명 한 명의 재취업 사례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보고, 중장년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라이프플래닝연구소의 과제다.
“중장년도 20대와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성장할 수 있게 돕는 마지막 퍼즐에 관한 갈증,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들의 갈증 모두 저희가 해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