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 조건이 악화하면서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2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국민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내수 부진의 골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2024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 자료를 보면 2분기 실질 GNI는 559조 5000억 원으로 전 분기(567조 5000억 원)에 비해 1.4% 쪼그라들었다. 실질 GNI는 국민들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실제 호주머니 사정을 반영한다.
실질 GNI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2분기(-0.9%) 이후 처음이다. 감소 폭은 2021년 3분기(-1.6%) 이후 가장 크다. 한은은 “2분기 반도체 수출 가격보다 유가와 가스 등 수입품 가격이 더 크게 오른 결과 실질무역손실이 지난 분기보다 확대됐다”며 “2분기 외국인에 대한 배당이 증가한 영향도 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질무역손실은 전 분기 11조 3000억 원에서 16조 6000억 원으로 늘었다. 내국인의 해외 소득에서 외국인의 국내 소득을 차감한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도 5조 9000억 원에서 4조 4000억 원으로 줄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속보치와 같은 -0.2%로 나왔다. 특히 민간소비와 투자가 부진했다. 민간소비는 승용차와 의류 등 재화소비가 부진했고 설비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중심으로 부진했다. 특히 민간소비(-0.2%)와 건설투자(-1.7%), 설비투자(-1.2%)가 모두 역성장하면서 성장률을 총 0.5%포인트나 끌어내렸다. 1분기 성장률 기여도가 0.8%포인트였던 순수출도 수출보다 수입이 크게 늘면서 2분기 성장률을 0.1%포인트 주저앉혔다.
문제는 내수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GNI만 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생겼다”며 “최근 물가도 한은의 목표 범위에 들어 통화정책 전환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은도 지금의 내수 부진은 경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반기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내수 회복 흐름이 빨라질 것이라는 게 한은의 입장이지만 구조적 요인이 내수 회복의 제약 요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추세적으로 둔화하고 있지만 필수 소비재를 포함한 생활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최근의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를 제약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도체, 정보기술(IT) 기기 등 자본 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 업종이 재편되면서 수출이 고용 및 가계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약화했다”고 덧붙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기업들이 벌어들인 성과는 급여나 성과급으로 연말에나 나타나기 때문에 내수가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