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일본에서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전격 ‘불참’을 결정하면서 그간 윤석열 정부의 몇 안되는 성과로 평가됐던 외교마저 실패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일본에 내주기만 하고 받는 건 없는 ‘굴욕 외교’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는 추도식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해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돼 광산에서 일하다 희생된 조선인을 추모하는 행사다. 일본은 올해 7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한국의 ‘찬성’을 이끌고자 추도식 개최를 약속했다. 일본은 매년 7~8월 일본 사도섬에서 추도식을 열고, 중앙정부 인사를 참석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 일본이 추도식을 대하는 자세는 이날의 파국을 예고라도 한 듯 뜨뜻미지근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 겨울이 다가오도록 추도식 개최일은 계속 미뤄졌다. 그렇게 잡힌 날짜가 오는 24일이다. 이마저도 한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것은 지난 20일, 불과 나흘 전이었다. 양국 정부의 기념비적이고 중요한 행사임에도 이렇게 촉박하게 진행된다는 자체가 이미 정상 궤도를 벗어난 셈이었다. 추도식이 갑작스레 결정되면서 정부는 희생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추도식 설명회 날짜도 확정하지 못한 채 백지화했다.
정부는 추도식 개최일을 발표하며 일본에서 누가 참석하는지, 추도사는 어떤 내용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정부가 일부러 알고도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던 중 추도식을 이틀 앞둔 22일 일본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을 참석시킨다고 발표했다. 정무관은 한국 차관급으로 애초 한국이 원했던 고위급은 맞다. 문제는 그의 역사 인식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참의원(상원) 당선 직후인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해법으로 ‘한국의 양보’를 제시했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가해자인 일본, 피해자인 한국이 함께 하는 행사인데 이 같은 논란적인 인물이 참석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의 진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추도사에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내용은 빠진채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이야기만 담긴다면 행사에 참여한 한국 정부 대표단과 희생자 유가족으로서는 모욕적인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외교부는 급박히 취소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추도식이 파행으로 이어지며 한국으로서는 일본이 원하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만 도와주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황에 놓였다. 명백한 외교 실패인 셈이다.
사도광산 추도식 사태를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 전반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윤 정부는 지난해 강제동원 피해의 과거사를 덮고 일본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제3자 변제안’을 수용했다. 당시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당시 외교부 수장이던 박진 장관은 “물컵의 남은 반을 일본 쪽 호응으로 채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반컵은 여전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도광산 추도식을 계기로 일본은 계속 한국만 물컵을 채우라는 자세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정부는 윤석열 정부 임기 반환점과 관련해 ‘무너진 한일관계를 일으켜 세워 복원했다’고 자평했는데, 일련의 사건들은 복원이 결국 ‘한국만 퍼주기’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으로 양국은 다양한 협력사업을 전개하고 각종 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도광산 추도식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삐걱대면서 60주년 의미 마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