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이라던 佛 국채금리 '그리스 수준' 추락

지표집계 후 처음 3.0% 넘어서
예산안 표류·내각 붕괴 가능성
투자자들 다른 유럽 채권 이동

AFP연합뉴스

‘유럽의 맹주’로 불리는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장기간 ‘투자 부적격 국가’로 분류된 그리스 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유럽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프랑스 국채가 그리스에 대한 투자만큼 위험해졌다고 시장이 판단한 셈이다. 프랑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를 웃도는 가운데 긴축과 증세를 골자로 한 정부 예산안이 여소야대 정치 지형 속에서 표류하며 프랑스에 대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3.02%까지 올라 그리스 10년물 국채의 금리인 3.01%를 잠시 웃돌았다. 전날도 한때 3.05%까지 상승하며 그리스의 금리 수준인 3.02%를 뛰어넘었다. 프랑스 국채금리가 그리스를 웃도는 수준까지 치솟은 것은 금리 지표가 집계된 이후 사상 처음이다. 유럽 대표 선진국인 프랑스와 2008년 재정 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시장조사기관으로부터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그리스가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셈이다.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독일과도 10년물 금리 차가 27일 장중 89bp(bp=0.01%포인트)까지 치솟으면서 12년 만에 최고치로 벌어졌다. 독일 역시 최근 들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는 등 경제적 혼란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유로존의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국채금리가 치솟은 배경에는 GDP의 6%에 육박하는 대규모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긴축이 절실하다. 9월 출범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내각은 내년 재정적자를 GDP의 5%로 낮추기 위해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는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새 내각의 예산안은 좌파와 우파 양측의 반발을 불렀다. 7월 총선에서 182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이 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은 413억 유로(약 61조 원)에 달하는 정부 지출 감축안이 사회복지·공공서비스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했고 143석을 차지한 극우 국민연합(RN)은 대기업과 부자 증세를 통해 193억 유로(약 28조 5000억 원)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는 예산안이 하원에서 부결될 경우 헌법에 따라 총리 직권으로 처리한다고 밝혔지만 의회 역시 내각 불신임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맞불을 놓은 상태다. 내각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프랑스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금리를 급등시킨 것이다. BNY인베스트먼트의 수석시장 전략가 제프 유는 “프랑스 국채시장은 이달 26일까지 5거래일 동안 2년 만에 최악의 매도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산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프랑스 국채금리는 계속 요동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니에 총리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금융시장에 큰 폭풍과 매우 심각한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RN이 요구하는 전기세 인상안을 철회하는 등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FT는 “예산안에 대한 양보는 2025년 말까지 재정적자를 5%까지 낮추겠다는 프랑스의 목표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며 “불안한 국채금리는 정부 차입 비용을 크게 증가시켜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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