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압박·주도권 확보용"…원내 협상서 예산 삭감 범위·규모 조정될듯

野, 사상초유 감액안 단독 처리
검경 특활비 등엔 "양보 없다"
세제개편안 두고도 파행 거듭
"일방 요구에 논의 불발" 네탓
부실·지각 심사 되풀이 우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실이 비어 있다. 이날 기재위는 조세소위와 전체회의를 열어 예산안 관련 세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열리지 못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예산안 처리 시한을 하루 앞둔 29일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라는 사상 초유의 강수를 두면서 야당의 입법 폭주가 도를 넘어 정부를 멈추겠다는 ‘쿠데타적 발상’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생·미래와 약자 보호를 내팽개친 ‘막가파식 행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내년 세제 개편안 역시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파행을 거듭해 올해도 어김없이 ‘부실·지각 심사’ 우려 가능성도 커지는 모습이다.


이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표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수정해 통과시킨 내년도 감액 예산안에는 정부·여당이 명확히 반대 의사를 밝힌 쟁점 사안들이 다수 포함됐다. 정부 제출 예산안에서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82억 5100만 원),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 9100만 원)와 특활비(80억 900만 원), 감사원 특경비(45억 원)와 특활비(15억 원) 등이 전액 삭감됐다. 정부 예비비(총 4조 8000억 원) 2조 8000억 원과 함께 대왕고래 가스전과 용산공원, 원자력발전·신재생에너지, 재해대책 예비비,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 등도 감액됐다.


이 때문에 거대 야당이 대통령실·검찰 특수활동비 삭감과 이재명표 예산 확보 등 요구안 관철을 위해 ‘민생의 보루’인 예산마저 정부·여당을 겨냥한 압박용 카드로 활용하는 데 혈안이 돼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예결위원들은 곧장 성명서를 내고 민주당의 일방적인 예산 칼질에 대해 “오로지 이재명 방탄을 위한 분풀이식 삭감”이라 규정하며 “예산안 단독 처리가 가져올 피해에 국민의 분노에 대한 책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민주당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민주당의 거짓 선동에 국민들은 속았으며 17개 시도, 226개 기초단체와 사회적 약자는 차가운 동절기의 한파에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감액안 단독 처리는 법정 기한 내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할 경우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협상 주도권을 놓칠 수 있는 점을 막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 역시 지역구 예산 등 증액이 절실한 건 마찬가지인 만큼 이번 단독 처리 강행으로 향후 증액 협상에서 ‘여당 압박용’ 카드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예산안 협상은 올해도 결국 양당 원내대표 간의 협상으로 흘러갈텐데 감액 및 증액 규모와 범위 등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자체 감액안 예산안에 대한 조정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여당은 민주당의 의도대로 따를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예결위 소속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 전 추가 협상 가능성에 대해 “저렇게 단독 수정했는데 협의할 내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예결위에 이어 세입의 기본 틀을 논의하는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여야 간 진통은 지속됐다. 기재위는 이날 조세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연달아 열고 잠정 합의된 세법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었지만 여야 간 막판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불발됐다. 기재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 2주간 ‘마라톤 심사’를 이어온 끝에 합의점을 도출한 11개의 세법안을 이날 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소득세법(가상자산 과세 유예), 상속증여세법(상속세 완화), 조세특례제한법(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이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기재위 전체회의는 결국 파행됐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민생 법안을 볼모로 자신들의 요구안만 고집한다고 비판했다. 기재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이틀간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협상을 하며 이견 차가 큰 소득세법 등 3개 법안은 양당 원내대표 간 협의로 하더라도 쟁점이 없었던 나머지 11개 세법안에 대해서는 오늘 상임위에서 처리하자고 설득했으나 민주당에서 거부했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기재위 파행의 책임을 국민의힘에 돌렸다. 민주당 소속 기재위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간사 간 추가합의까지 반영된 14건의 위원회 대안 및 수정안이 조세소위와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내년도 예산 부수법률안으로 상정될 예정이었다”며 “(국민의힘 소속) 송언석 위원장이 조세소위 개회 직전 소득세법·조세특례제한법·상속증여세법 등 3건의 위원회 대안에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내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며 전체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여야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소득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세법 개정안 28건 등 총 35건을 내년도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하고 여야에 법정 시한 내 처리를 압박했다. 여야가 30일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지정된 법안들은 다음 달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부의된 안건이 표결에 부쳐질 경우 절대 과반을 점유한 민주당의 입맛에 맞는 법안들의 가결이 유력하다.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도혜원 기자 dohye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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