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내 수요 둔화가 지속됐던 디스플레이·부품 주문이 연말 들어 깜짝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품 수요처인 중국 세트(완제품) 업체들이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전 불확실성에 대비해 부품 재고를 적극적으로 축적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낡은 가전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체할 때 보조금 혜택을 주는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도 수요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을 중심으로 D램과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카메라모듈 등 부품 재고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TV 업체들은 액정표시장치(LCD) 등을 비롯한 디스플레이 패널 구입도 확대하는 추세다.
일차적으로는 내년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시 확대될 미중 무역 분쟁 상황을 고려해 부품 재고를 축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관세 인상이나 특정 부품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 등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중국 정부가 8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인 이구환신(以舊換新)도 수요 증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이달 6일까지 이구환신 정책으로 발생한 가전 수요 규모는 2000억 위안(약 39조 원)에 달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12월 들어 부품 수출액은 공통적으로 증가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TRASS)에 따르면 이달 1~10일 카메라모듈 수출금액은 2만 9447만 달러로 전년 대비 76% 증가했다. MLCC와 동박적층판(CCL) 등도 30% 넘게 수출액이 늘었다. 중화권 LCD 패널 업체들은 고객사들의 재고 축적 상황을 고려해 내년 1~2월 패널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팀장은 “부품 주문 회복이 D램과 MLCC, 카메라 부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12월이 전통적인 부품 비수기임을 감안하면 최근 회복 동향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연말 부품 주문 깜짝 증가가 최근 지속되고 있는 범용 D램의 빠른 가격 하락을 막아줄 ‘방어막’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반기 들어 범용 D램은 완제품 수요 둔화에 중국 업체들의 저가 판매 공세가 더해져 가격 하락세가 가팔랐다.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8)의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올 7월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로 넉 달 새 35.7% 내렸다. 범용 D램 사업의 수익성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낙폭을 줄여줄 요인이 생긴 셈이다. 3분기 보수적인 고객사들의 재고 정책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던 삼성전기(009150)와 LG이노텍(011070) 등 부품 업계에도 호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기 수요 부진으로 내년 1분기 메모리 가격 하락 폭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제는 하락 속도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