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 살리는 약학계의 맥가이버

약학자의 사명은 기존의 약으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거대 제약회사들은 10억 달러나 들여 약국에 신약을 진열하려고 한다. 하지만 말라리아나 아프리카 수면병 등 돈이 안 되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의 개발은 대부분 무시하고 있다.

커티스 청은 의대 3학년 때인 지난 2001년 모잠비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중 이 같은 모순을 직접 목격했다. 말라리아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러 긴 줄을 서 있었지만 청이 가진 약품은 양이 너무 부족했고, 또한 너무 오래돼 이미 내성이 생긴 병원균을 치료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계속 죽어갔다. 6년 후 31세의 약학자가 된 그는 제3세계 환자들에 더 나은 약을 공급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존스 홉킨스 임상혼합물선별연구소(JHCCSI)는 기존의 1만 가지 약품들을 수집해 목록화한 후 이들이 제3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질병, 예를 들면 샤가스병·콜레라·나병 등을 구제하는데 효과가 있는지를 판단한다.

이 약품 목록은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참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표본을 제공하며, 알맞은 약품을 선정하는 약학계의 위키피디아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수백만 달러의 연구개발 예산이 절감되고 있다. 청은 2011년까지 시중의 모든 약품을 다 실험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저렴한 치료를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Q: 신약 개발에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가?
A: 우선 수백만 가지의 혼합물 중 질병을 퇴치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한다. 설령 효과가 탁월하다고 해도 그 물질이 기존에 인체에 실험된 적이 없다면 안전성을 증명하는 실험에만 15년이 소요될 수도 있다.
현재의 개발 속도를 감안하면 전 세계 약품이 1만 가지에서 2만 가지로 늘어나는 데는 약 300년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말라리아처럼 미국이나 부유한 나라에는 거의 없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은 개발 속도가 훨씬 더디다. 그것을 개발한다고 해서 금전적 이익이 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Q: 기존의 약으로 질병을 고치려는 것은 신약 개발에 따르는 어려움을 피하려는 의도인가?
A: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우리의 목록에 있는 대부분의 약을 승인했다. 그 중에 새로운 질병에 대해 가장 효능이 뛰어난 것들을 골라 동물에 실험해본다.
이 과정은 3~6개월이 걸린다. 그리고 나면 임상실험을 한다. 이 약이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승인받았다면 초기의 안전성 실험은 건너뛰고 바로 2년밖에 안 걸리는 제2단계 실험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Q: 특정 약품이 원래 목적 이외에 다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어떻게 판단하는가?
A: 약의 독성을 보고 판단한다. 예를 들면 항암제로 말라리아를 치료하려는 사람은 없다. 좋지 않은 부작용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항생제가 보다 적절한 처방이 될 것이다. 항생제에도 항HIV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생제에 내성이 있기 때문이다.

Q: 안전시험을 생략했는데도 걱정스럽지 않은가?
A: 기존 약품의 새로운 용도를 실험하면 알려지지 않았던 역작용을 발견하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홉킨스의 연구자들은 최근에 간염 치료제가 HIV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유발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덕분에 이 약을 HIV에 감염된 사람에게 투여할 때는 더 큰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Q: 약품을 선별하는 것 외에 약품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는 것이 당신의 목표로 알고 있다. 약품에 대해 어떤 종류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
A: 과학 및 의학 논문, 특허, FDA 파일, 제약회사 및 실험실에서 기존에 발표하지 않은 자료도 포함시킬 것이다.

Q: 그렇다면 이 같은 방식이 신약을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보다 저렴한가?
A: 당연하다. JHCCSI는 80만 달러의 예산밖에 신청하지 않았다. 약물의 선별과 수집을 늘려도 비용이 4,000만~5,000만 달러까지 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Q: 그렇다면 새로 발견한 치료법이 있는가?
A: 우리는 동물실험을 통해 항히스타민제가 말라리아 기생균을 죽이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올 여름 잠비아의 시골 병원에서 일할 때 이 항히스타민제가 일반의약품으로 정당 10센트에 팔리는 것을 보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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