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산업기술체험관 건립해야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와 한국산업기술재단은 지금까지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이를 운영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국가·사회적 메리트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봤다.

특히 우수 산업기술 인력 양성과 국가경쟁력 제고의 산실로 자리 매김한 해외 선진 산업기술체험관들의 성공사례를 현지 취재를 통해 집중 분석, 우리가 역할모델로 삼을 만한 산업기술체험관 운용의 묘수들도 살펴보았다.

오감만족의 체감형 전시물과 신속한 전시물 업그레이드, 기업 메세나 활동과의 유기적 연계, 교육성 강화, 산업기술·과학·예술의 융합, 그리고 세계적 랜드 마크로의 육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실정에 부합하는 산업 기술체험관은 어떤 모델이 돼야 할까. 우리가 지표로 삼을 벤치마킹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되집어보며 한국형 산업기술체험관이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해보자.


즐거운 체험, 생각하는 체험

선진 각국에서는 21세기 산업기술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산업기술체험관 의 건립과 운용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각 산업기술체험관은 사회 전반에 산업기술 친화 마인드를 확산시키는 전초기지이자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전주기적 산업 기술 교육의 장(場)으로서 그 가치와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우수 인력들의 산업계 진출 기피가 가속화되면서 지속가능한 국가경제발전의 구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기술계 전문가들도 현재의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기술 강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을 통한 대중적 산업기술 지지기반 조성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시관 관람 문화조차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무작정 산업기술 체험관을 많이 짓는다고 이공계 위기가 해소 될까.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산업기술체험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외 선진 산업기술체험관들의 성공사례를 분석해보면 한국형 산업기술체험관이 지표로 삼을 만할 몇 가지 벤치마킹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업기술체험관이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상호 교감형 인터액티브 전시물의 확보다. 흥미와 재미를 겸비한 체감형 전시물을 통해 산업기술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대중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 산업기술문화 창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시카고 과학산업 박물관과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엄, 프랑스의 라빌레트 과학산업관, 그리고 스페인의 프린시페 펠리페 과학박물관 등 연간 수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선진 산업기술체험관들이 지난 수십 년간 실천해 온 일관된 모토다.

익스플로러토리엄의 경우 수십 명의 전문 엔지니어와 공학자를 자체 보유, 관람객의 니즈에 맞춘 체감형 전시물을 직접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익스플로러토리움의 데니스 바텔 관장은 “손과 몸으로 느끼는 체감형 전시물을 활용, 전시장을 즐거움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산업기술체험관 성공의 제1 원칙”이라며 “여기에는 전시물의 신속한 업그레이드와 유지 보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함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기술 체험의 초점이 오직 흥미에 맞춰져서는 곤란하다. 산업기술체험관이 자칫 단순히 웃고 즐기는 놀이동산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린시페 펠리페의 홍보 책임자인 루시아 마르티네즈는 “산업기술체험관은 체험 과정에서 창의적 사고와 심층적 지식 욕구를 유발할 수 있는 전시물의 설계·운용이 중요하다”며 “생각하는 체험 없이는 산업기술문화 진흥, 산업기술 인재 양성, 산업계 인력난 해소, 그리고 국가경쟁력 향상이라는 선순 환 사이클 구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창의력 배양의 메카로 육성

이에 더해 산업기술체험관의 교육적 가치 제고 또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부분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그 어느 국가보다 뜨거운데다 최근 독창적 사고능력을 갖춘 창의 인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창의력 배양을 전면에 내세워 교육적 효용성을 강화한다면 산업기술체험관의 조기 연착륙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라빌레트는 산업기술의 폐해까지 가감 없이 노출, 관람객의 창의적·비판적 사고를 키워주는 전략으로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라빌레트의 마르크 지라드 전시책임자는 “산업기술체험관은 체험형 전시물을 근간으로 공교육에서 하지 못하는 다양한 창의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며 “관람객의 지속적인 재방문을 유도하는데 있어 교육성보다 유용한 무기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의 일환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선진적인 산업기술 교수법의 개발과 보급에도 앞장설 필요가 있다. 교사 1명에게 전수된 산업기술 체험교육은 곧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공교육 자체의 변혁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스플로러토리움의 교사연수원,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의 과학교육연구소, 그리고 프린시페 펠리페의 학교센터특수교육프로그램 등 대다수 산업기술체험관들이 별도의 산업기술 교수법 개발 부서나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중 익스플로러토리움의 교사연수원 은 미국 상원과 하원의 교육위원회에서 우수 교수법 개발시스템의 표본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익스플로러토리움의 바텔 관장은 “학교 교사들은 대개 하루 평균 150여명의 학생과 접촉하고 있다”며 “산업기술에 대한 교사 1명의 인식을 바꿔 놓는 것은 수만 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산업기술 친화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같은 교육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서 홈페이지를 통한 고품질의 교육 콘텐츠 무상 제공, 웹캐스트·인터넷TV(IPTV) 와 같은 인터넷 매체의 활용 등은 우리가 꼭 염두에 둘 만한 아이디어다.

세계 최강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만큼 산업기술체험관이 손쉽게 (?)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수단도 없기 때 문이다.

세계와 경쟁하라

문제는 체험형 전시물 설치와 신속한 업그레이드, 교육성 제고 등 앞서 언급한 모든 것 들이 말이나 의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일례로 이 모두에서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라빌레트는 1년 예산이 1억 유로가 넘는다. 한화로 1,000억 원을 웃도는 액수다. 이외의 선진 산업기술체험관도 400~500억 원은 예사다.

우리가 라빌레트 등과 동급의 역량을 갖추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를 타개할 묘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과 연계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함으로서 이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미국의 산업기술체험관들은 전시물 설치·운용의 많은 비중을 기업 및 기업가들의 후원, 기증, 합작 등 메세나에 의지하고 있다. 또한 전체 예산 중 10% 이상이 이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고 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 우리도 산업기술체험관 설립 단계부터 그 궁극적 수혜자인 기업들의 전 방위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최신 제품들 을 전시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산업기술체험관 자체적으로는 특정 지역민이나 내국인이 아닌 전 세계 산업기술체험관을 상대로 경쟁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건물의 설계에서부터 전시물의 구성, 운용시스템 등 모든 측면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프린시페 펠리페를 중심으로 한 예술과 과학도시(CAC) 같이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 중 하나다.

프린시페 펠리페는 이 같은 방식으로 개관 8년 만에 세계적 산업기술체험관으로 우뚝 섰다. CAC는 스페인을 넘어 유럽의 관광 명소로 부상하며 지난해 2억440만 유로의 추가 관광수입을 유발, 발렌시아 지역경제 부양의 중심축이 됐다.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체험관 건립은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된 수준이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이 같은 논의가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내에 산업기술 체험관 건립이 이루어진다면 그 숫자의 많고 적음 보다는 단 한 곳이라도 내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더 많은 투자와 관심을 쏟아야만 할 것이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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