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진단이라고도 불리는 유전자 진단은 분자생물학과 유전자공학이 발전하면서 최근 임상검사 분야에 도입, 응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전자 진단 시장은 개척의 여지가 많은 대표적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인 씨젠은 단 한 번의 검사로 다양한 유전자 관련 병원체를 진단할 수 있는 호흡기 질환 병원체 검사제품을 개발, 유전자 진단 시장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 A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신종 인플루엔자 A의 바이러스 유전자는 일반적인 인 플루엔자 A를 발병시키는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다르다.
즉 신종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재조합되거나 대대적인 변이를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유전자 진단이 필수적이다. 사실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수도 없이 많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만 해도 200여종이나 되며, 인플루엔자 A 역시 유전자형에 따라 144가지의 바이러스가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를 개별적인 유전자 진단으로는 정확하게 검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한 번의 검사로 다양한 유전자 관련 병원체를 진단할 수 있는 호흡기 질환 병원체 검사 제품이며, 씨젠(대표 천종윤)은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특히 씨젠의 호흡기 질환 병원체 검사 제품은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A 사태로 진가를 발휘하게 됐다.
최근 천 대표는 멕시코의 한 대형병원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즉 몇몇 호흡기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신종 인플루엔자 A 감염 여부를 검사했는데, 현미경 검사법·항원항체 검사법·미생물 배양법 등 기존의 검사법을 사용한 결과 정확도가 떨어졌다는 것. 반면 씨젠의 제품을 이용한 결과 보다 정확하게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실 씨젠은 세계 유전자 진단 시장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멕시코의 대형병원에서 사용한 검사 제품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12종의 바이러스 유전자, 그리고 6종의 박테리아 유전자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씨젠의 유전자 진단 제품은 감기나 인플루엔자는 물론 폐렴, 기관지염 등 중증 호흡기 질환과 관련된 다양한 병원체를 단 한 번의 검사로 동시에 진단할 수 있어 1~2개의 병원체만 검사하는 기존 검사법에 비해 비용 절감 효과가 탁월하다.
씨젠은 지난달 말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에 5,200명분의 호흡기 질환 병원체 검사 제품, 즉 신종 인플루엔자 A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제품을 수출했다. 또한 이탈리아, 스페인, 중동, 중국, 인도 등 전 세계로부터 주문이 쇄도하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획기적 유전자 증폭 기술 개발
기존에는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진단하기 위해 현미경 검사법, 항원항체 검사법, 그리고 미생물 배양법 등의 간접 검사법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간접 검사법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조기 발견도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 같은 한계를 해결한 것이 바로 유전자 진단이다.
유전자 진단에 사용되는 유전자 증폭 기술(PCR)은 특정 유전자를 효소에 의해 증폭시켜 주는 것이다. 지난 1983년 미국의 뮬리스 박사에 의해 개발된 이후 유전자의 이상 유무를 진단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사용돼 오고 있다.
하지만 기존 유전자 증폭 기술은 한번에 하나씩의 바이러스 유전자밖에 진단할 수 없고, 검사에 불필요한 유전자가 결합돼 오류가 발생하는 등 정교함이 떨어져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초래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씨젠은 기존 유전자 증폭 기술의 단점을 보완한 ACP와 DPO라는 두 가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ACP는 유전자를 증폭할 때 특이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유전자를 증폭하려면 프라이머라는 미세 DNA가 복제하고자 하는 유전자와 정확하게 결합돼야 하는데, 씨젠이 개발한 특수 구조의 프라이머는 자신이 원하는 유전자를 정확하게 찾아가 결합, 유전자 증폭을 시작한다.
DPO 기술은 ACP 기술을 적용, 동시에 여러 개의 유전자와 프라이머가 결합해 원하는 유전자들을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DPO 기술은 감염성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암과 같은 특정한 질환에도 활용되고 있다. 즉 한 개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변형된 ‘단일 염기 변이’ 분석에 응용되고 있는 것.
한 번 검사로 다양한 병원체 진단
DPO 기술을 적용한 동시다중 병원체 검사법은 한 번의 검사로 수십 개의 병원체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어 기존 검사법에 비해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게 바로 차세대 진단 플랫폼으로 꼽히는 씨플렉스. 프린터라는 플랫폼에 복사 기능과 스캐너 기능을 탑재하듯이 씨플렉스라는 플랫폼에 장비와 진단시약을 첨가하면 여러 종류의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
실제 씨플렉스는 호흡기 질환, 뇌수막염, 갑상선암, 성감염증, 약제 내성 등 약 12종의 질환을 검사할 수 있다. 씨플렉스는 영국의 랩901, 일본의 시마즈, 미국의 애질런트와 제휴해 자동화 유전자 진단 시스템을 구축, 현재 세계 1,100여 개 연구기관에서 활용되고 있다.
씨젠은 이 같은 기술적 성과를 인정받아 보건신기술 인증을 받았다. 천 대표는 올해 안으로 씨플렉스가 미 식품의약국(FDA)의 인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 신뢰도를 공식 인정받게 되면 매출 역시 2~3 배는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씨젠의 매출 목표는 제품 판매와 기술 이전료를 합해 약 200억 원 정도다.
구본혁기자 nbg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