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특허의 딜레마

특정 기업의 유방암 유전자 특허 무효화하기 위한 대규모 소송 제기돼

유방암은 유방에 발생하는 암이다. 서구에서는 여성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암이 유방암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궁경부암과 위암이 더 많은 빈도로 발생한다. 남성의 유방암은 여성의 1% 정도로 극히 드물다.

일반적으로 유방암은 최소 몇 달 또는 몇 년에 걸쳐 발생한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고, 통증도 없다. 물론 현재까지 유방암 발생의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지방질 또는 육류가 많은 서구식 음식물을 섭취하는 사람에게 빈발하고, 연령이 높을수록 발병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30세인 여성은 향후 10년 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280분의 1이고, 40세는 70분의 1, 50세는 40분의 1, 그리고 60세는 30분의 1로 추정되고 있다.

호르몬의 분비도 영향을 미친다. 남보다 일찍 초경을 경험했거나 늦게 폐경을 하는 경우 유방암 발병 위험성이 높아진다. 출산도 영향을 미쳐 30세 이전에 아기를 출산하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줄어드는 반면 임신을 하지 못한 여성이나 독신녀, 그리고 30세 이후에 첫 아기를 출산한 여성은 발생 빈도가 높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다. 어머니, 이모, 고모, 자매, 사촌 등 가까운 친척 중에 유방암이 생기는 경우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BRCA는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며, 이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유방암에 걸리게 된다. 딸에게 유전될 확률도 50%에 달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BRCA1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방암 발병 위험은 85% 증가하고, 난소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반면 BRCA2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유방암 발병 위험은 높지만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높지 않다.

유방암 판정을 받은 리스베스 세리아니는 최근 유전자 검사를 통해 2개의 유방암 유전자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었다. BRCA1인 경우 난소암 발병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만약 BRCA1의 돌연변이에 의해 유방암이 발병했다면 난소암을 예방하기 위해 난소를 들어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유방암 유전자의 돌연변이 검사는 환자의 혈액을 채취, 유전자 검사를 하는 전문기관이나 전문기업에서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유타에 있는 생명공학기업 미리어드 제네틱스는 유전자 검사를 받고 싶다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회사는 유방암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으며, 독점적인 연구개발권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리아니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지난 5월 세리아니, 그리고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 5명은 미국 자유인권협회(ACLU)와 손잡고 미리어드와 미국 특허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법적으로 볼 때 자연물에 대해서는 특허를 줄 수 없는 만큼 미리어드가 보유한 BRCA1, BRCA2에 대한 특허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소송에서 이기면 더 이상 특정 기업이 유전자 특허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유전자 특허란 유전자를 분리, 정제해 낸 기업에게 해당 유전자의 소유 및 판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 자유인권협회의 여성권리 프로젝트 담당 변호사인 산드라 파크는 “특정 기업이 유전자 특허를 획득하게 되면 해당 유전자를 전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며 “유전자를 활용한 실험의 독점권은 물론 유전자에 대한 검사 독점권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앤서니 로메로 사무총장은 “사람이 자신의 진료에 대해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일부분”이라며 “정부는 유전자에 대한 통제권을 민간 기업에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리어드는 이번 소송에 대해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 담당자인 리처드 마시는 “유전자 특허는 정당한 것이며, 법정도 우리 회사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특허의 역사를 보면 미리어드가 훨씬 유리한 상태다. 유전자 특허에 대해 제기된 소송 가운데 원고가 이긴 것은 하나도 없다. 특허법에서는 ‘자연물에는 특허를 줄 수 없다’고 명시돼 있지만 미국 특허청은 게놈 상태에서 분리된 유전자의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미국 특허청은 이를 근거로 수천 건의 유전자 특허를 내주었다. 이는 인간 전체 유전자의 20%에 해당한다. 기업은 이 같은 유전자를 사용한 진단시험은 물론 자사가 특허를 보유한 유전자를 연구에 사용하는 다른 기업에 사용료를 물려 실질적인 이득을 보고 있다.

플로리다 대학의 미생물학자 케네스 번스는 미국 자유인권협회의 노력을 대단하게 여긴다. 그는 “인간 유전자는 누군가가 발명해낸 것이 아니다”면서 “그 유전자에 특허를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유전자 치료법에 대해 연구 및 개발하는 것을 막는 짓”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전자 특허 반대자들에게 기존 판례의 장벽은 턱없이 높기만 하다고 말한다.

애틀랜타 서덜랜드 로펌의 생명과학 전문가인 빌 워렌은 유전자 특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송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국 자유인권협회는 미리어드의 유전자 특허 자체보다는 이들이 실질적인 기술혁신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판례 중에는 이 같은 점을 들어 유전자 특허 부여가 타당하지 못하다는 판결이 나온 경우도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유전자에 대해 특허권을 인정해 온 관행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 특허가 생명공학업계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원고의 주장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특허권은 돈이 많이 드는 신약개발이나 임상실험을 보호해주는 구실을 한다”면서 “제한적 독점이 없으면 그런 일은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생명과학정책센터장인 데이비드 에윙 던컨은 다른 회사의 연구개발을 제한하지 않고도 생명공학회사가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정부가 특정 질병에 관련된 유전자 연구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어떤 회사라도 제한된 시간 내 유전자와 관련된 연구를 실시,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는 이미 백신 개발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물론 미국 자유인권협회의 소송이 이 같은 새로운 해결책을 도출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파크는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를 발명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전자는 사람으로 인해 생겨난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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