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곧 국가의 미래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의 삶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과학기술이 전제돼야만 더 좋은 성능의 휴대폰을 개발하고, 자동차도 만들 수 있다. 또한 우주도 가고, 유전자를 연구해 질병을 고칠 수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총괄했던 과학기술부가 지난해 폐지되고,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쳐져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교육과 과학기술 부처의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과학기술 부문의 추동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의 진단이다.
과거 과학기술부 산하에는 26개의 대표적인 이공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있었다. 지금 13개 연구기관은 기초과학을 다룬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 나머지 13개 연구기관은 돈 버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지식경제부에 편재돼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 온 연구기관들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주무부처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는 위기국면에 처한 연구기관들의 확실한 자리매김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라는 시리즈를 마련,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연구기관들의 목표, 전략, 활동, 그리고 성과를 알려 과학기술 입국의 꿈과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 -편집자 註
미래형 원자력 기술 개발과 수출의 요람
원자력발전의 기본 원리는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한다는 점에서 화력 발전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물을 끓이기 위한 에너지 원의 공급방식이 다르다. 화력발전에서는 보일러 내의 연소반응에 의존하지만 원자력발전은 원자로 내에 있는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에 의존한다.
일반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내부에는 천연 우라늄 또는 저농축 우라늄 등의 핵연료가 장착되며, 중수나 경수 등의 감속재를 이용해 핵분열 속도를 최대한 늦추게 된다.
만약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되는 핵연료보다 우라늄 성분이 많은 고농축 우라늄을 감속재 없이 수백만 분의 1초로 핵분열시키면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핵폭탄의 원리다.
물론 이 같은 일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지만 은연 중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요인이 됐다. 특히 방사선과 핵폐기물은 현실적인 위협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은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기술개발과 경험축적으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원료인 우라늄 1g은 석유 9드럼, 유연탄 3톤에 필적하는 고효율 에너지며,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탄소 배출권을 사고파는 시대에 더없이 각광받을 공산이 크며,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참으로 매력적인 에너지원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이 양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사용해올 수 있었던 것도 전력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발전원가가 낮은 원자력발전 덕분이 었다.
지난해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고유가 행진은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이외의 에너지 대안을 찾도록 요구했으며, 풍력과 태양광 등 다양한 에너지원이 부각됐다.
하지만 현재의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원자력발전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재개되고 폐쇄됐던 원자력발전소가 다시 가동되는 등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맞게 됐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은 발전 용량 기준 세계 5위,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준으로는 세계 3위에 올라있다. 이 같은 국내 원자력 기술 발전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개발력이 토대를 이루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현재 원자력연구원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미래형 원자력 기술과 국내 원자력 기술의 수출이다. 미래형 원자력 기술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3세대 또는 3.5세대의 원자로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4세대 원자로를 말하는데, 소듐냉각고속로와 초고온가스로가 대표적이다.
소듐냉각고속로는 경수로 및 중수로와 달리 소듐을 감속재로 사용해 상대적으로 핵분열 속도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으로 기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줄이고, 높은 가격의 우라늄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이다.
원자력연구원은 4세대 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의 원형격인 칼리머-600의 개념설계를 지난 2006년 완료했으며, 오는 2017년까지 소듐냉각고속로의 표준설계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이를 통해 2028년에는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실증 원자로를 건설할 예정이다.
소듐냉각고속로가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IAEA의 통제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는 전량이 물이 담긴 수조형태의 저장고에 보관되고 있다.
따라서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형 원자력 기술인 소듐냉각고속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IAEA가 허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같은 목적으로 개발된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기술이 바로 파이로 프로세싱(pyro processing)이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사용 후 핵연료를 분말 상태로 만든 뒤 이를 다시 핵연료 형태로 바꿔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플루토늄 추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사용 후 핵연료를 핵폭탄의 원료로 사용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원자력연구원은 2011년까지 실제 사용 후 핵연료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유사물질을 사용하는 파이로 프로세싱의 모의실험 시설을 구축하고, 2025년에는 연간 10톤 규모의 준상용 시설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초고온가스로는 고온의 열을 얻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원자로며, 전력생산보다는 수소생산 및 담수생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존 원자로의 경우 열교환기를 통해 300℃ 내외의 열을 얻지만 초고온가스로는 약 950℃의 고온을 얻을 수 있도록 개발된다. 이 정도의 고온은 물의 열분해를 통해 값싸게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데, 원자력연구원은 오는 2022년까지 실증 원자로를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원자력연구원이 주력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국내 원자력 기술의 수출이다. 현재 국내 원자력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지만 해외시장에 독자적으로 수출하는 것은 어려운 상태다.
당초 원자력 기술은 내수용으로 도입됐고, 원자력 기술을 이전해 준 미국이 제3국에 대한 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가 바로 일체형 중소형 원자로인 스마트 원자로와 연구용 원자로다. 스마트 원자로는 원자로 내부의 제어봉, 스팀 제너레이 터 등 핵심부품이 일체화된 것으로 핵 비확산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우며, 원자로 외부의 각종 배관을 최소화해 안정성을 향상시킨 게 특징이다.
이 스마트 원자로는 인구 10만 명 이하의 도시에 전기 또는 담수를 공급할 수 있어 대형 원자력발전소도 입이 어려운 동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이 가능하다.
연구용 원자로는 원자력 관련 연구와 방사선 물질 생산 등을 목적으로 하는 소형 원자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6개 국가에서 약 280기의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 중이지만 대부분 노후 기종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15년간 약 50기의 연구용 원자로가 새로 건설되거나 업 그레이드될 전망인데, 시장 규모만도 10조~20조원에 달한다. 원자력연구원은 지난 1995년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설계·건설한 기술력을 토대로 연구용 원자로의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덕=강재윤기자 hama9806@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