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전체목록
허두영
허두영 과학저널리스트
메일 공유
연재 중
해적경영학
6개의 칼럼 #경제
  • 1718년 7월 영국 왕 조지 1세는 신대륙 항로를 위협하는 카리브해의 해적을 진압하기 위해 사면령을 내렸다. 당시 바하마 나소(Nassau)에서 ‘해적공화국’(Republic of Pirates)을 무대로 해적들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다. 이 때 해적공화국의 우두머리 벤자민 호르니골드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해적이 사면을 받고 해적 생활을 청산했다.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도 사면을 받아들였다가 다시 해적으로 복귀했다. 처음부터 사면을 거부한 거의 유일한 해적이 바로 찰스 베인이다. 조지 1세의 명령을 받고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는 날, 찰스 베인은 배 한 척에 불을 질러 나소 항구로 들어오는 총독의 함대로 밀어 보냈다. 사면을 거부하는 노골적인 신호다. 한 술 더 떠 바로 주변에서 프랑스 함선을 약탈한 뒤 불을 질러 가라앉혔다. 한 마디로 ‘엿 먹어라’는 도발이다. 베인의 해적질은 늘 불과 연기로 가득했다. 사방팔방에 불을 지르고 화약을 터뜨려 겁을 주면서, 분노와 광기로 가리지 않고 노략질하는 전형적인 해적이다. 총독과 해적사냥군들이 포위망을 좁혀 오자, 베인은 상선을 하나 장악한 뒤, 해군이 다가오자 부하들을 약탈당한 불쌍한 선원인 것처럼 행세하게 했다. ‘선원’들이 작전대로 거짓 정보를 흘리자 해군이 엉뚱한 곳으로 뱃머리를 돌리면서, 베인은 기민하고 대범하게 항구를 빠져나갔다. 단순한 무력뿐 아니라 정보전과 기만술에 두루 능통했으며, 부하를 따르게 만드는 리더십도 탁월했다. 영리한 만큼 무리한 전투를 피하려 한 게 문제였을까? 1718년 11월 카리브 해의 윈드워드 해협에서 프랑스 군함과 마주쳤을 때, ‘캘리코 잭’ 존 래컴이 부추긴 부하들의 반란으로 겁쟁이로 몰려 배에서 내렸다. 작은 해적질을 계속 하던 그는 이듬해 폭풍으로 무인도에 고립됐다가 발견되어 자메이카로 압송됐다. 1720년 베인은 교수형을 선고받고, 포트로열 항구에 매달렸다. 그는 눈 가리개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최후를 맞았다. 향년 40세. 찰스 베인의 강경한 해적질은 ‘오라클’(Oracle)의 래리 엘리슨의 저돌적인 경영과 닮았다. ‘오라클’이 장악한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시장에,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NT에서 작동하는 SQL 서버 7.0을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엘리슨은 ‘마이크로소프트’를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장난감 같은 SQL 서버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면 1000만 달러(약 140억 원)를 주겠다고 도발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독설가다. 반항적인 기질도 비슷하다. 영국 해군의 해적 소탕작전을 조롱하듯 약탈을 서슴지 않던 베인처럼, 엘리슨도 경쟁사가 점점 커지자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시장을 장악해 버렸다. 2000년대 초 ‘피플소프트’(PeopleSoft)가 M&A로 몸집을 키우자, 엘리슨은 아예 ‘피플소프트’를 삼키기로 작정했다. ‘피플소프트’를 뒤흔들며 집요하게 법정 투쟁을 벌인 엘리슨은 2005년 103억 달러에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세계 기업 M&A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호전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보전과 기만술도 악명이 높다. 엘리슨은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인수를 제안한 뒤, 다른 정보를 흘려 이사진을 이간질하면서 집요하게 ‘피플소프트’를 괴롭혔다. 미국 법무부를 움직여 ‘마이크로소프트’에 반독점 소송을 걸면서, 엘리슨은 사설 탐정을 써서 마이크로소프트 거래처의 휴지통까지 뒤지면서 법정에서 시비를 걸었다. 경쟁사 휴지통까지 헤집는 악랄한 경영자로 낙인 찍혔지만,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끝까지 강변했다. ‘실리콘밸리의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좋아하는 엘리슨은 해적이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췄다. “나는 성공에 필요한 모든 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I have had all the disadvantages required for success)는 것이다. 사생아부터 가난까지 겪은 역경들이다. 그는 스스로 해적이라고 밝혔다. “나는 해적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I‘m a pirate. I always have been. I always will be). 누구를 롤모델로 삼았을까?
    2025.11.26 18:39:46
    집요하게 달라붙어라 : 찰스 베인 & 래리 엘리슨
  • 1701년 5월 영국 템즈강의 한 항구에서 가엾은 해적 선장이 교수형을 당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구석구석 결박당하고 목은 올가미에 걸린 채 축 늘어져 쇠창살에 갇힌 상태로 죽었다. 향년 47세. 당국은 해적질에 대한 경고로 썩어 문드러져 해골이 드러날 때까지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했다. 억울하게 해적으로 몰려 사형당했다가, 가장 유명한 해적으로 부활한 ‘캡틴 키드’(Captain Kidd)라는 애칭을 가진 윌리엄 키드다. ‘캡틴 키드’는 원래 영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해적질을 하는 사략선(私掠船)을 지휘했다. 무굴제국 황제 에우랑제브의 무역선 ‘콰다르 머천트’(Quedagh Merchant)는 왜 하필 그 때 프랑스 국기를 달았을까? ‘캡틴 키드’는 1698년 ‘콰다르 머천트’를 붙잡아 엄청난 보물을 털었다. 분노한 무굴제국의 협박에 영국은 ‘캡틴 키드’를 해적으로 몰고 대대적으로 수배령을 내렸다. 이 때 건 현상금만 해도 2000 파운드(100억원)를 넘었다고 한다.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비굴한가? 졸지에 해적으로 몰린 ‘캡틴 키드’는 자신을 후원하던 뉴욕 식민지 총독 벨로몬트 경에게 편지를 보냈다. 살려주면 숨겨놓은 100만 파운드(5조원)의 보물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이 때 ‘캡틴 키드’가 준 보물지도로 뉴욕의 가디너 섬을 뒤진 결과 1만 파운드(500억원)의 보물이 발견됐다. 해적이 숨긴 보물을 보물지도로 찾아낸 매우 드문 사례다. 총독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수한 ‘캡틴 키드’를 체포해서 보물과 함께 영국으로 보냈다. 보물은 재판에서 해적질 증거로 채택됐다. 편지는 해적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전설을 만들어냈다. 보물지도만 있으면 보물섬에 가서 해적의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캡틴 키드’가 숨긴 나머지 보물이 어느 외딴 섬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황금풍뎅이’와 로버트 스티븐슨의 동화 ‘보물섬’은 ‘캡틴 키드’의 편지를 근거로 대중의 상상을 자극했다. 우연히 골동품 상자나 서류에서 ‘W.K.’(William Kidd)라는 서명이나, 시기를 뜻하는 연도 ‘1669’나, 장소를 가리키는 ‘China Sea’와 비슷한 흔적을 보면, ‘캡틴 키드’가 숨긴 보물을 찾는 단서가 아닐지 의심해 볼 일이다. 가엾은 ‘캡틴 키드’가 겪은 비극은 ‘메가업로드’(Megaupload) 창업자 킴 닷컴(Kim Dotcom)의 사례와 비슷해 보인다. 킴 닷컴은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에서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의 책임은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는 ‘메가업로드’가 저작권 침해를 방조한다며 조직적인 범죄집단으로 규정했다. 새로운 기술이 법규와 부딪힐 때, 법적인 위험을 감안해야 한다. 법률과 자본을 틀어쥔 정부 앞에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가? 킴 닷컴은 컴퓨터 보안 전문가로 협력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영화계와 음반계가 ‘메가업로드’를 디지털 해적으로 몰아 부치자, 미국 정부가 태도를 바꿔 ‘메가업로드’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버렸다. 미국이 압박을 높이자 뉴질랜드 법원도 미국 송환에 동의한 가운데, 킴 닷컴은 아직도 건강을 핑계로 뉴질랜드에서 버티고 있다. 그렇다. 정부나 권력자는 언제든지 약속을 깰 수 있다! 영국 정부가 ‘해적’ 프레임을 씌우고 체포하려 하자, ‘캡틴 키드’는 쉽사리 보물지도를 넘겨주는 바람에 협상에서 주도권을 뺏겼다. 킴 닷컴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고 자산을 압류하거나 동결하면서 방어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킴 닷컴은 스스로 ‘인터넷 자유의 수호자’(Guardian of Internet Freedom)라고 언론에 호소했지만, 지루한 법정 다툼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금과 건강을 모두 소진해 버렸다. 해적-보물지도-보물섬으로 이어지는 해적 설화는 거의 대부분 ‘캡틴 키드’의 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동화 ‘보물선’의 롱 존 실버나 ‘피터팬’의 후크 선장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해적의 대명사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로 꼽힌다. 왜 ‘캡틴 키드’는 극적인 배경만 제공하고, 주인공이 되지 못한 걸까? 해적으로 낙인 찍히기 싫었던 ‘해적’이기 때문이다. 협상에 실패하면, 차라리 도끼를 들고 진짜 해적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2025.11.20 15:31:42
    정부의 약속을 믿지 마라 : 윌리엄 키드 & 킴 닷컴
  • 1718년 11월 카리브 해의 윈드워드 해협에서 프랑스 군함과 마주친 해적선 ‘레인저’(Ranger)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공격과 후퇴를 놓고 의견이 갈린 것이다. 투표에 부친 결과 압도적인 차이(76 대 15)로 공격해야 했지만, 선장 찰스 베인은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 군함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며 계속 후퇴를 고집했다. 물러난 해적들은 선장을 겁쟁이라 놀리며 찰스 베인을 쫓아내고, 공격하자고 부추긴 존 래컴을 선장으로 추대했다. 래컴은 정말 프랑스 군함을 공격할 생각이었을까? 큰 바다에서 대형 무역선을 상대로 한 탕을 노리는 과감한 해적과 달리, 그는 기동력 좋은 작은 해적선으로 가까운 바다에서 혼자 다니는 작은 어선이나 무역선만 노리는 좀도둑 같은 해적질로 승률을 높였다. 자랑할만한 무용담이 없다. 탁월한 말발로 동료 해적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켜 선장 자리를 꿰차고, 유명한 해적인 것처럼 이름을 남겼을 뿐이다. 겉멋만 번지르르한 해적일 터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 벨벳을 즐겨 두른 여느 해적 선장과 달리, 래컴은 밝고 화려한 옥양목(Calico) 바지를 즐겨 입었다. 그래서 별명이 ‘캘리코 잭’(Calico Jack)이다. 패션 감각에 디자인 감각까지 뛰어났을까? 해골 아래 칼 두 자루를 엇갈리게 배치한 해적기 ‘졸리로저’(Jolly Roger)도 그의 작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여자 해적을 둘씩이나 거느리고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를 해적선에 태우고 해적질 하는 그는 해적 세계의 최고 멋쟁이였다. 흥청망청한 그의 삶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720년 노략질을 마치고 자메이카의 한 항구에 정박했을 때, 영국의 해적사냥군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술과 향락에 취한 ‘캘리코 잭’과 해적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붙잡혔다. 여자 해적 둘, 앤 보니와 메리 리드만이 끝까지 칼을 들고 저항했을 뿐이다. ‘캘리코 잭’이 교수대로 끌려갈 때 앤 보니가 외쳤다. “사내답게 싸웠다면, 개처럼 목 매달리진 않았을 거야”(If you had fought like a Man, you need not have been hang‘d like a Dog). 향년 37세. ‘캘리코 잭’의 낭만적인 해적질은 ‘위워크’(WeWork)의 애덤 노이먼의 과시적인 경영과 닮았다. 노이먼도 ‘캘리코 잭’처럼 청산유수(靑山流水) 달변이었다. 그는 ‘위’(We)라는 이상적인 단어를 앞세워, 공유오피스를 ‘세상을 바꾸는 커뮤니티’로 포장했다. 달콤한 비전과 열정적인 발표에 반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같은 거물 투자자에게서 수십 억달러를 끌어 모았다. 화려한 언변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듣는 사람을 혹하게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성과가 없었다. ‘위워크’는 사업모델이 근본적으로 부실했다. 부동산 임대사업을 첨단 기술사업인 것처럼 포장했을 뿐이다. 엄청난 투자금을 끌어왔지만,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 개인 전용기를 장만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데다 부인을 끌어들여 방만하게 경영하고, 회사 자산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면서 2019년 결국 ‘위워크’에서 쫓겨났다. ‘캘리코 잭’의 몰락과 묘하게 겹치는 장면이다. 남은 것은 이미지다. ‘캘리코 잭’의 ‘졸리로저’는 검은 바탕 한 가운데 허연 해골과 해적 칼 두 자루를 X자로 걸어 놓았다. 공포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대중적인 해적기로 꼽힌다. 노이먼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던, ‘위’(We)를 기업 브랜드로 내세워 단순한 사무공간을 공동체의 상징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위워크’(WeWork), ‘위리브’(WeLive), ‘위그로’(WeGrow) 같은 확장적인 브랜드로 공유경제의 깃발을 먼저 꽂은 것이다. ‘캘리코 잭’은 해적의 역사에 가장 상징적인 해적기를 펄럭였고, 애덤 노이먼은 공유경제의 역사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찍었다. 그들은 왜 자신이 제시한 비전대로 살지 않았을까? 못했을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가 중요했을 뿐, 실천하려는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와 허세가 본질이었을 뿐, 자신이 만든 신화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2025.11.07 16:45:37
    신화의 무게를 감당하라 : 잭 래컴 & 애덤 노이먼
  • 해적이 호화선을 붙잡고나서 배를 서로 교환한 뒤 돌려보내는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다. 1717년 2월 ‘블랙샘’ 사무엘 벨라미가 이끄는 해적선 ‘술타나’는 카리브해에서 영국 호화 노예선 ‘위다’를 사흘 동안 뒤쫓았다. 경고사격 대포 한 발에 놀란 ‘위다’는 저항하지 않고 바로 항복했다. ‘블랙샘’은 ‘위다’에 대포를 옮겨 기함으로 삼고, 포로로 잡은 선장과 선원은 ‘술타나’를 타고 떠나게 했다. 해적이 포로를 배려하고 아량을 베푼 드문 사례다. 두 달 뒤 뉴잉글랜드 근처에서 중형 무역선을 나포한 뒤, ‘블랙샘’은 선장에게 해적으로 합류할 것을 권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거절당했다. ‘블랙샘’은 선량한 선장에게 무역선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해적들이 반대하자 투표에 부쳐 결국 배에 불을 질러 바다에 가라앉혀야 했다. 못내 미안했는지, 그는 선장에게 변명했다. “그들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려 하지 않아”(They scorn to do anyone a mischief, when it is not for their advantage). ‘바다의 로빈후드’로 알려진 ‘블랙샘’이 해적질 하는 방식이다. 따르는 해적들도 스스로 ‘로빈후드의 부하들’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우리는 가난해서 해적이 되었고, 그들이 가진 것을 나눠 가질 뿐이다’는 것이다. 정당한 분노와 혁명적인 공감으로 다진 리더십이다. 해적들은 가발을 쓰지 않은 검은 생머리에 검은 머리띠를 두르고 검은 외투를 즐겨 걸친 그를 ‘블랙샘’ 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로빈후드’의 삶은 왜 그리 짧은가? 무역선을 불태운 며칠 뒤, 위용을 자랑하던 해적선 ‘위다’는 미국 매사추세츠 앞바다에서 갑작스러운 폭풍에 시달리다 결국 침몰했다. ‘블랙샘’을 포함해서 모두 144명이 물에 빠져 죽고 2명이 구조됐다. 향년 28세. 난폭한 해적에게 정의롭고 관대하며 민주적인 리더십이 어떻게 먹혔을까? ‘블랙샘’은 불과 1년 남짓한 해적 생활에서 약탈한 규모가 120만 달러로, 해적 1위(Forbes. 2008)로 평가된다. ‘블랙샘’이 제시한 정의 리더십은 ‘자포스’ 최고경영자(CEO)인 토니 셰이의 행복 리더십과 닮았다. ‘블랙샘’은 대중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의 횡포에 분노하고 로빈후드처럼 ‘정의로운 해적’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셰이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단순한 기업 문화에 분노했다. 즐거움과 열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행복 전달’이라는 깃발을 걸고 직원은 ‘행복 전도사’, 본인은 ‘최고행복경영자’라고 불렀다. 타성에 물든 조직에 낯선 비전을 심는 것은 쉽지 않다. ‘블랙샘’이 포로를 대하는 방식에 해적들은 처음에 거북해서 투표까지 하자고 했지만, 결국 ‘로빈후드의 부하들’이라는 호칭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셰이는 2013년 위계적인 기업 운영방식을 뒤엎는 홀라크러시(Holacracy)를 도입했다. 직책이 아니라 역할을 중심으로, 투명한 규칙 아래 스스로 책임지고 의사 결정하는 구조다. 수평적인 소통과 협업을 강조한 것이다. ‘덧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일 것이다. ‘블랙샘’도 셰이도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한창 젊은 나이에 엉뚱한 사고로 요절했다. ‘블랙샘’은 느닷없는 폭풍에 배가 침몰하면서 물에 빠져 죽었고, 셰이는 창고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로 불에 타 죽었다. 각각 향년 28세와 46세. ‘블랙샘’은 약탈 규모가 해적 1위에 올랐고, 셰이는 ‘자포스’를 ‘아마존’에 10억 달러(1조4000억 원)에 매각한 뒤다. 해적의 바다와 자본의 시장에서 각각 가장 빛나던 시기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혁신 리더는 삶을 옥죄는 현실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분노를 비전으로 바꾸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 ‘블랙샘’은 분노를 바로 공감으로 연결했다. “그들은 법이란 가면 아래 가난한 사람을 강탈하고, 우리는 용기라는 보호막 아래 부자를 약탈한다”(They rob the poor under the cover of law, and we plunder the rich under protection of our own courage). 셰이는 ‘신발 판매’를 행복을 전달하는 ‘고객서비스’로 공감을 창출했다. “자포스는 우연히 신발을 팔게 된 고객서비스 회사입니다”(Zappos is a customer service company that just happens to sell shoes).
    2025.10.15 21:00:15
     분노하고 공감하라_사무엘 벨라미 & 토니 셰이
  • 1720년 6월 캐나다 펀들랜드 남동쪽 트레파시 항구에 검은 ‘졸리로저’(Jolly Roger)를 내건 해적선 ‘로열포츈’(Royal Fortune)이 다가왔다. 검은 깃발은 순순히 항복하면 자비를 베풀겠다는 신호다. 온 항구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정박했던 프랑스 함선과 상선 172척이 두려움에 질려 도망가거나 항복해버렸다. 해적선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항구를 장악했다. ‘로열포츈’ 한 척에 60명 남짓한 해적이 타고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검은 남작’(Black Bart) 바르톨로뮤 로버츠는 가장 성공한 해적으로 꼽힌다. 불과 3년 남짓 해적질 하면서 무려 470척이 넘는 배를 약탈했다. 요즘 가치로 치면 3200만 달러(한화 420억 원)쯤 된다. 노예선을 타다가 해적에게 붙잡혔지만, 뛰어난 항해 실력으로 6주 만에 선장으로 추대됐다. 자신을 배려해 주던 선장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첫 작전에서 아프리카 서해안의 섬 프린시페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해적이 되기 싫어서 그랬을까? ‘검은 남작’은 흉악한 해적이 아니라 멋진 신사처럼 보였다. 화려한 진홍색 코트에 다이아몬드 십자목걸이를 걸고 검은 깃털을 단 모자를 쓰고 전투를 지휘했다. 술은 입에 대지 않고 차를 즐겨 마셨다. 해적선에서 도박과 싸움을 금지하고, 항상 청결을 유지하도록 했으며, 해적이 지켜야 할 조항을 담은 ‘해적규정’(Pirate Code)을 만들어 다 같이 서명하고 성서에 손을 얹고 맹세하게 했다. ‘검은 남작’은 ‘졸리로저’에 모래시계를 든 해골을 그려 넣었다. ‘죽음을 잊지 마라’(Memento Mori)는 경계일까? 1722년 2월 아프라키 서해안에서 평소처럼 멋진 차림으로 영국 해군과의 전투를 지휘하다, 갑자기 날아온 포탄 파편에 가슴을 맞고 즉사했다. 향년 39세. 해적들은 그의 시신을 바로 돛으로 둘둘 감싸 바다 깊숙이 가라앉혔다. 해군에 잡혀 모욕을 당하지 않고 기사처럼 당당하게 죽겠다는 평소의 유언 때문이다. 해적 ‘검은 남작’이 제시한 상징 리더십은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와 닮았다. 잡스는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로 ‘무장’하고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명장면을 연출했다. 기품 있는 완벽주의와 미니멀리즘이다. 특히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을 발표한 날은 ‘검은 남작’이 ‘로열포츈’을 이끌고 트레파시에 나타난 것처럼, 무대는 물론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와 ‘Think Different’ 슬로건이 ‘검은 남작’의 ‘졸리로저’처럼 강렬했다. 엄격한 원칙과 규율도 마찬가지다. 잡스는 애플에서 극도의 완벽주의와 비밀주의를 요구하며, 까다로운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이나 직원은 가차 없이 내쫓았다. ‘매킨토시’를 기획할 때 회로설계팀에는 칩과 회로까지 아름답게 배치하라고 다그치고, 제품설계팀에는 아무나 컴퓨터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특수 나사로 잠그라고 지시했다. 또 화가가 작품을 마무리하듯, 개발팀이 회로 기판에 서명을 남기도록 하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성찰의 태도도 ‘검은 남작’을 연상시킨다. 잡스는 지난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은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발명품이다”(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고 말했다. 췌장에 생긴 신경내분비종양을 수술로 떼어낸 시한부 삶을 고백한 것이다. ‘Stay Foolish’였을까?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잡스의 리더십 앞에 다들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야 한다. ‘검은 남작’과 잡스는 신념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증명했다. 제시하지 않으면 리더가 될 수 없고, 증명하지 못하면 리더로 남을 수 없다. ‘검은 남작’은 태동하는 새로운 해양제국의 질서에 저항했고, 잡스는 컴퓨터산업을 지배하던 빅브라더(Big Brother)의 관성에 맞섰다. 기존 질서에 결코 순응하지 않고, 각각 해적의 무력과 혁신의 법칙으로 자신의 깃발이 휘날리는 새로운 세상을 구현한 것이다.
    2025.10.10 16:32:25
    방향을 제시하고 증명하라: 바르톨로뮤 로버츠 & 스티브 잡스
  • 17세기말 무굴제국 황제 에우랑제브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1695년 순례자와 보물을 실은 황제의 호화무역선 ‘간지사와이’가 홍해에서 인도로 가다가 해적들에게 어이없이 약탈당했다. 무역선 이름이 페르시아어로 ‘넘치는 보물’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많은 보물을 싣고 있었을까? 지금으로 치면 일천억 원이 넘는 규모로 보인다. ‘롱벤’(Long Ben) 헨리 에브리는 다른 해적선 5척을 끌어들여 사상최대의 약탈작전을 지휘했다. 동참한 해적선장 토마스 튜가 전투하다 죽으면서 다른 해적선들이 머뭇거렸지만, ‘롱벤’은 해적선 ‘팬시’를 이끌고 거의 단독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불과 100명 남짓한 ‘팬시’의 해적이 보물선을 지키는 해군 500명과 순례자 600명을 제압한 것이다. ‘롱벤’은 이 작전으로 단박에 ‘해적의 왕’으로 불렸다. 영국 해군 항해사 출신 헨리 에브리는 노예선을 타다가 사략선(私掠船)으로 옮겨 탔다. 1694년 ‘찰스 2세’호에서 몇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자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배를 장악한 뒤, 언변이 뛰어난 에브리를 선장으로 추대했다. 꺽다리로 ‘롱벤’이라는 별명은 얻은 그는 배 이름을 ‘팬시’로 바꾸고 무자비한 해적질을 시작했다. ‘롱벤’은 엄격한 규율과 공정한 분배로 해적들의 충성을 끌어내고, 차가운 머리와 치밀한 계산으로 바다를 지배했다. 격노한 에우랑제브가 온 세계에 수배령을 내리면서 ‘롱벤’은 자주 숨던 마다가스카르 기지를 버리고 카리브해로 향했다. 바하마 제도의 뉴프로비던스로 숨어든 것이다. ‘롱벤’은 해적들에게 약속한 보물을 나눠준 뒤, 자신의 몫을 챙겨 아무도 모르게 증발했다. 엑시트에 성공한 것일까? 그가 숨겨놓은 보물이 아직도 카리브해 어딘가 묻혀 있을 것이라는 소문만 남았다. 모든 해적의 로망이랄까, ‘롱벤’은 혜성처럼 나타나 사상최대의 약탈을 저지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롱벤’이 보여준 담대한 리더십은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의 전설적인 궤적과 어울린다. ‘롱벤’이 무굴 제국 황제의 보물선을 털었다면, 나카모토는 중앙은행이 독점하던 화폐 발행권에 정면 도전했다. 2008년 백서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을 발표한 뒤 이듬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탈중앙 화폐인 비트코인을 창조해서 국가가 보증하는 금융시스템의 뿌리를 흔든 것이다. 해적들의 추대로 선장에 오르고 10대1도 되지 않는 전력으로 황제의 보물선을 제압한 것은 ‘롱벤’이 평소 인정받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철저한 계획과 대담한 실행으로 이룬 성과다. 나카모토는 컴퓨터공학과 암호학에 이어 게임이론까지 완벽에 가까운 블록체인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겼다. 또 ‘롱벤’이 공적에 따라 전리품을 나눈 것처럼, 엄격한 규칙 아래 채굴한 양만큼 공정하게 보상하여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비트코인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시작이 담대한 만큼 마무리도 완벽했다. 나카모토는 정체 자체가 신비로운 만큼 엑시트도 전설적이다. 한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다, 본명이 맞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3년 남짓 활동하고 짧은 이메일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다른 일로 넘어갔어. 개빈과 모든 사람들에게 맡겼으니 괜찮아”. 그가 보유한 재산은 비트코인만 해도 110만BTC(1,300억 달러, 177조원. 2025년 기준)로, 세계 부호 12위 수준이다. 조무래기 해적은 황제의 보물선을 털겠다는 작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오합지졸 은행강도도 중앙은행 금고는 쳐다보지도 못한다. ‘롱벤’과 나카모토는 담대한 비전으로 기존 질서의 빈틈을 깨고 들어가 세계 질서를 바꿔 버렸다. 빈틈없는 작전의 열쇠는 공정한 규칙과 두터운 신뢰였고, 완벽한 증발의 비결은 깔끔한 분배였다. 세상을 흔드는 혁신은 담대한 시작과 철저한 설계와 깔끔한 엑시트로 완성되는 걸까?
    2025.10.01 11:17:18
    크게 한 방 터뜨리고 사라져라
1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