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厚薄人(자후박인)
자신을 혹독하게 평가하고 주위 사람을 가볍게 질책한다면 원망의 소리가 멀어질 것이다
수정 2016-04-15 18:10
입력 2016-04-15 11:42
하지만 인류가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려고 무단히 노력했지만 실패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과거의 사례는 지금과 완전하게 같지 않고 설문과 자문은 실제 상황과 다르기 때문이다. 또 공학적 사고에 길들이게 되면 사람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정해놓은 프레임으로 바라보려는 고집을 피우게 된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해도 지휘 본부에서는 만반의 대책이 강구돼 있으니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특히 성공의 방정식이라는 덫에 갇히게 되면 자아도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자신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꼴이다.
성공의 방정식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자신이 가진 습관과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 관련해서 논어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자신을 아주 혹독하게 평가하고 주위 사람을 가볍게 질책한다면 원망의 소리가 멀어질 것이다(궁자후이박책어인·躬自厚而薄責於人, 즉원원의·則遠怨矣).” 줄여서 ‘자후박인(自厚薄人)’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실패를 피하고자 하지만 실패를 만날 수밖에 없다. 이때 실패의 책임을 나보다 남에게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거의 동물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권한이 많은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풍토가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실패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면 체면을 구기게 될 뿐만 아니라 권위가 심하게 타격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방정식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상황을 왜곡해 실패를 맛봤으면서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람이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자신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는 ‘자박후인(自薄厚人)’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반대로 ‘자후박인(自厚薄人)’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패를 확인하고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면 달콤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만 다시 쓰디쓴 긴 시간의 고통을 피할 수가 없다. 달콤한 순간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이 유혹에 넘어가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이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다. 사람은 모두가 불행해지더라도 자신만을 지켜야겠다는 오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성공의 방정식은 결코 열어서는 안 되지만 결국 열어버리는 저주의 공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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