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률 뒤에 가려진 인구정책의 공백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현 정부 인구정책 컨트롤타워 부재 지속
저출산 대응 강력한 의지 있는지 의문
청년들에 희망 줄 ‘기본계획’ 서둘러야
수정 2026-01-26 18:28
입력 2026-01-27 05:00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지난주 홍콩에서 열린 ‘세계 저출산 위기 포럼(Global Fertility Crisis Forum)’에 참석했다. 세계 각국의 인구학자·사회학자·경제학자는 물론 정책 전문가와 글로벌 기업 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인 이 포럼에서 한국은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사실 최근 한국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저점을 찍은 후 출생아 수와 출산율이 완만하지만 분명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공식 통계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명 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홍콩에서 마주한 외부의 시선은 전혀 달랐다. 포럼 참가자들에게 0.72와 0.8의 차이는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인구 소멸의 최전선에 서 있는 국가였다.
발표자로 나선 필자는 한국 정부가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일·가정 양립, 주거 및 돌봄 부담 완화를 주축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으며 수도권 집중 완화와 가족 가치에 대한 인식 전환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모색 중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올바른 방향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합계출산율 1.0명 이하로의 급락이 우려되는 중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주거 정책이 동아시아 공통 난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는지 높은 관심을 보였다.
토론 과정에서는 인상적인 질문도 제기됐다. 한 참가자는 “전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2.0명을 웃도는데 현재 상황을 위기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적어도 한국의 0.7명대 출산율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신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명백한 위기라고 답했다. 현 상황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청년의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에 좌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출산의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지만 그 혜택은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만큼 출산에 대한 정책적 보상이 더 커야 한다는 지적, 저출산 정책의 성과는 출산율 수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국민이 ‘원하는 수의 자녀’를 가질 수 있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있는 논의 속에서 필자는 매우 곤혹스러운 질문을 한 가지 받았다. 바로 한국 정부가 저출산 대응을 위한 구조 개혁을 끝까지 밀어붙일 강력한 의지와 실행력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의 현실을 떠올릴 때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웠다.
세계가 한국 정부의 의지를 묻는 지금, 정작 국내 인구정책의 사령탑은 비어 있다. 대통령실 인구정책비서관 자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공석이고 인구정책의 주무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역시 부위원장과 상임위원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여러 부처 간 조율이 필수적인 인구정책에서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리더십 공백이 실제 정책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시행돼야 할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발표되지 않았다. 향후 5년, 더 나아가 미래 한국 사회를 좌우할 인구전략이 사실상 백지상태로 방치돼 있는 셈이다. 이는 인구문제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명백한 신호다.
인구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정책 효과는 긴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에 인구정책에는 정권을 넘어서는 일관된 호흡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출산에 대한 일시적 지원이 아니라 자녀를 낳고 키우는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다. 컨트롤타워도, 기본계획도 없는 정부에게서 청년들이 그런 기대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합계출산율 반등에 안도하는 일이 아니라 공백 상태의 인구정책 실행 체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출산율은 국가에 대한 청년의 신뢰도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세계가 한국의 의지를 묻고 있다. 이제 정부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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