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특검, 무너지는 사법 시스템
윤홍우 정치부장
검찰 불신 탓 ‘2차특검’ 정쟁도구 전락
재수사 한계, 무리한 기소 남발 폐해도
사법·수사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할 때
‘해결사’ 찾는 조급함보다 인내 필요
수정 2026-01-28 08:32
입력 2026-01-27 18:00
특별검사 제도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스페셜 카운슬(Special Counsel)’은 전통적으로 살아 있는 권력의 비위를 보다 독립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돼 왔다.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자신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이른바 ‘토요일 밤의 학살’이 벌어졌고 이는 미국 정치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이 수사 책임자를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됐고 미 의회는 1970년대 후반 특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법제화했다. 그 후 특검은 기존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운 극단적 상황에서만 가동되는 예외적인 장치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제도적 취지와 달리 오늘날 한국의 특검 제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의 비위를 겨냥한 최후의 수단이라기보다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권 전반이 특검을 정쟁의 도구로 꺼내 드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현 여당은 전임 정권을 향한 특검법을 또다시 통과시켰고 야당 역시 통일교, 공천 헌금 의혹 등을 겨냥한 새로운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특검이 예외가 아닌 정치 공방의 일상적 수단이 된 현실을 드러낸다.
물론 최근 국회를 통과해 출범을 앞둔 2차 종합특검이 겨냥하는 사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12·3 비상계엄과 영부인의 국정 전횡 의혹은 헌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사안이다. 앞선 ‘3대 특검’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다면 이를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문제의식은 정당하며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밝힐 것인가’만큼이나 ‘어떤 방식으로 밝혀낼 것인가’다. 정치권은 검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지금의 사법 환경은 과거와 분명히 다르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범정부 합동수사 체계가 이미 가동 중이고 검찰 역시 예전처럼 편향된 수사를 감행할 정치적 유인이나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굳이 비상적 수단을 고집한다면 그 선택은 정당한 문제 제기라기보다 정치적 셈법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수사 실무 측면에서의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대대적인 수사가 한 차례 휩쓸고 간 뒤 남은 찌꺼기를 다시 뒤지는 재수사는 구조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문제는 특검이 빈손으로 물러날 수 없다는 정치적 압박에 놓일 때다.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먼지털기식 수사’나 지엽적 사안을 본질로 둔갑시키는 무리한 기소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사건의 실체 규명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사법 정의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은 임시 조직을 반복적으로 동원하기보다 기존 사법 시스템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수사 결과 못지않게 법 집행 시스템이라는 국가의 기초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판단에서다. 오로지 특검만이 ‘정의로운 수사기관’처럼 비쳐질수록 공식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는 약화되고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깊어진다.
미국에서 특검이 남용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특검은 법무장관이 임명하며 수사 범위와 기간·예산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정치권이 수사의 방향을 좌우하거나 성과를 강요할 여지는 크지 않다. 특검이 어디까지나 통제된 예외 장치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다.
내란과 국정 전횡의 잔죄는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국가 수사 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역시 정치권의 책임이다. 위기 때마다 또 다른 ‘해결사’를 찾는 조급함보다 우리가 만들어온 제도를 신뢰하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가 사법을 놓아주고, 수사는 다시 시스템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헌정사의 비극을 제대로 매듭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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