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화된 경제 정책
임대차법·최저임금 인상·강사법 등
선의의 정책에 외려 취약층만 피해
‘시장 실패’ 고치려다 ‘정부 실패’ 반복
부동산 시장과 전면전서 교훈삼아야
입력 2026-01-29 06:02
최형욱
논설위원
때로는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른바 ‘선의의 역설’이다. 스리랑카는 2021년 환경보호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유기농 정책을 폈다. 주요 수출품인 농산물의 생산량 감소와 물가 급등을 초래했고 코로나19로 인한 관광 산업 붕괴, 감세로 인한 재정 악화 등이 겹치면서 이듬해 사실상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최대 피해자는 농민들과 서민이었다.
한때 남미의 부국이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의 장기 위기도 도덕적 잣대로 경제정책을 밀어붙인 결과다.무분별한 현금 복지 확대도 문제였지만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에 직접 개입한 것이 더 큰 실책이었다. 이들 포퓰리즘 정권은 서민 보호 등을 내세워 자본 유출입과 환율·물가를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물가 억제로 채산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생필품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가의 탈출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역효과를 낸 사례가 부지기수다. 문재인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자 대부업체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렸다. 또 세입자 보호를 앞세워 임대차법을 도입하자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전세 난민’이 속출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 줄폐업, 일자리 위축 등으로 이어졌다. 2019년 시간강사 처우 개선법이 시행되자 예산이 부족했던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쁜 정책이다.
때로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정책 성과가 아니라 자신은 사회적 약자 편이라는 구호 자체라는 의심마저 든다. 골목상권 보호를 내세워 도입한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단적인 사례다. 그동안 여러 지역의 소상공인들이 대형마트 휴무일에는 매출이 되레 준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지금의 여당은 마이동풍이었다. 이런 사이 ‘나 홀로’ 성장한 쿠팡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도 미국 정치권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 민주노총은 택배 기사들의 과로 방지를 이유로 새벽 배송 제한을 주장했지만 정작 대다수 택배 기사들이 반발하면서 흐지부지됐다.
물론 국가를 운영할 때 재분배, 계층 사다리 복원, 공공재 확대 등은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정책 목표이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려면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성 지원, 지방 인재 채용 우대, 임대주택·공공의료 확대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가 시장에 도덕적 프레임을 강요할 때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되 시장 경제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 본연의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시장과 기업을 복지 확대나 정책 동원 수단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자원 분배 기능을 왜곡시켜 저성장과 양극화를 부추기게 된다. ‘행복한 일터’를 만든다며 기업에 주 4.5일제, 정규직화 등 근로조건 개선을 지나치게 강제하면 기업 투자 감소와 생산성 저하가 불가피하다. 남미 국가들에서 보듯 경제 파이가 줄어들면 인기영합적인 정책도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며 부동산 시장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은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으로 가는 길이고 공동체 안정까지 뒤흔들 수 있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눈앞의 고통과 저항이 두려워 불공정과 비정상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은 어디로 튈지 몰라 우려스럽다. 투기꾼·다주택자를 손보려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근본 목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인간 욕망의 집약체로 결코 정부와 대립 관계가 아니다. 아무리 선의라도 무리하게 누르면 시장의 역습을 초래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경험된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 인상과 규제 강화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다 아파트·전월세 가격 동반 상승의 부작용을 초래했다. 시장을 이기려다 시장을 망쳐놓은 셈이다. 이번에도 ‘시장 실패’를 교정하려다 ‘정부 실패’를 반복할 경우 그 피해는 주거 취약층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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