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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기적

|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입력 2026-02-05 07:00

지면 30면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필수 진료과의 기피 현상’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정작 필수과가 어떤 진료과인지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함께하는 과를 필수과라고 합의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사 면허를 받은 지 1년이 막 지나 대다수 다른 동기들처럼 레지던트 1년 차가 된 나는 필수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 어린 나이에 불가피하게 ‘사망 선언’이라는 현장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최선을 다해 진료했던 환자를 잃고 그의 가족과 세상에 그의 부존재를 선언해야 했던 경험. 두려움과 외로움에 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호출기 벨은 계속 울렸다. 다른 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나의 슬픔, 외로움, 고통이 살고자 하는 다른 또 다른 타인에게 영향을 줘서는 안 되기에 아주 냉철해야 하는 현실, 그때 첫 경험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다른 이유로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죽음이 있다. 전임의 4년 차에 접어들던 2009년 2월. 뉴스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흘러나왔다. 며칠간 수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을 찾아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가 이 사회에 남긴 굵직한 발자국만큼 그의 죽음은 세상을 경건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각막을 기증했고 두 사람이 새로 눈을 떴다.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분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던 나에게, 그는 기적을 보여줬다. 연간 200명 정도의 뇌사 기증자 수가 그해 200명대 후반에 다다랐고, 몇 년 뒤 500명을 넘겼다. 특히 사후 시행되는 인체 조직기증, 안구기증 등은 2009년이 가장 많은 분들의 기증이 있었던 해로 기록됐다.

지난 20년간 가장 많이 상승한 경제지표 중 하나가 올 들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코스피지수다. 같은 기간 한국의 뇌사 기증자 숫자도 약 2배로 증가했으니 이에 못지않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여전히 여러 매체나 기관을 통해 한국의 기증 문화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성숙하지 못했다는 정보를 쉽게 접한다. 왜 그럴까. 물론 이식 현장에 몸담은 의사의 입장에서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나타난 변화처럼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이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미국과 스페인 등 일부 나라와의 비교에 치우쳐 우리의 기증률을 낮다고 하기에는 아쉽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권의 나라들 중 기증률이 가장 높고 몇 번의 변곡점을 거쳐 가장 가파른 상승 곡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코스피 5000 돌파를 환호하는 이면에는 이와 전혀 무관하게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뇌사 기증 문화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일부의 외침 뒤에도 이와 전혀 무관한 삶이 훨씬 더 많다. 이런저런 제도적 문제를 지적하거나 사회적 관심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사업들이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히 뇌사 기증은 선택의 문제다.

기증하신 분도, 기증하지 않으신 분도 모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진정한 존중의 문화가 세상을 바꾸리라 믿는다. 시나브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위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추기경님을 TV에서 처음 뵀을 때 그분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들었던 기도문이 아직도 나에게는 삶의 지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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