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공습, 상상력이 무기다
AI·로봇 등 생산 현장 투입 머잖아 가시화
국가·기업·노조 ‘미지의 길’ 머리 맞대야
생산과 노동 등 가치재정립 ‘상상력’ 필요
기술 진보는 ‘필연’ 사회적 합의 도모할때
수정 2026-02-05 00:15
입력 2026-02-05 06:05
한영일
논설위원
지금보다 1세기나 앞서 살았던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최근 자주 소환된다. 그가 1920년에 쓴 희극 ‘로섬의 만능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 때문이다. 이 작품은 기계문명이 인간 말살을 시도하는 미래를 그렸는데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등장시켰다. 노예나 고된 노동을 뜻하는 ‘로보타(robota)’에서 비롯된 이 말에는 태생부터 노동 대체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100여 년이나 된 ‘오래된 상상’이 한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 생산 라인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투입될 가능성이 나오자 노조가 즉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향후 전개는 지켜볼 일이지만 훗날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을 거부한 국내 첫 노조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미래는 이제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노조의 반발은 마차 시대에 자동차 운행을 제한했던 영국의 ‘붉은 깃발법’이나 산업혁명 초창기 기계 파괴 운동이었던 ‘러다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기술 진보 앞에서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기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는 결국 국가와 산업의 도태로 귀결됐음을 인류 역사는 늘 말해준다.
산업화 이후 혁신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노사 관계를 요구해 왔다. 증기기관과 전기가 그랬고, 자동화 설비와 로봇 팔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인간형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노동자와 기업 모두 과거의 틀 안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노사 관계 역시 단순한 임금과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진보와 인간 자체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라는 상상력의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머지않아 공장뿐 아니라 가정과 사무실에서도 각종 로봇과 공존하는 날이 올 것이다. 집에서는 가사 로봇을 쓰면서도 생산 현장에서는 로봇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는 일관되기 어렵다.
인간만이 노동을 한다는 전통적 명제가 흔들리면서 생산의 3요소(토지·노동·자본) 개념 역시 재편되고 있다. 노동은 알고리즘과 로봇이 대체하고, 토지는 우주 공간으로까지 확장되는 구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시대의 핵심인 데이터센터를 우주 공간에 짓겠다고 하고, 중국의 에너지 스타트업은 고고도 풍력발전으로 하늘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신박한 실험에도 나섰다. 생산이 땅에서만 이뤄질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AI끼리만 대화를 하고 인간은 관전자 역할에 머무는 까무러칠 만한 채팅마저 등장했다. 상상은 더 이상 느릿한 미래가 아니라 곧바로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준비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지구의 지배종이 된 비결로 ‘상상 속 질서’를 믿고 협력할 수 있었던 독특한 능력을 꼽았다. 국가와 화폐, 법과 기업은 모두 집단적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길을 가야 하는 AI 시대에는 이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 그리고 휴머노이드와 경쟁해야 하는 인간에게 결국 남는 차별화 요소는 창의성과 통찰, 즉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곧 생존의 조건이자 경쟁력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과거의 성공 경험과 고정관념에 머무르는 순간 변화의 파도는 우리를 앞질러 갈 것이다. 제도와 인식, 노사 관행 역시 새롭게 짜야 한다. 국가와 기업·노조 모두 예외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조만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겠다는 방침은 의미가 작지 않다. 개별 사업장의 갈등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전환의 경로를 설계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 진보를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를 어떻게 관리하고 혁신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정교한 분배의 그물을 짜는 것이다. 로봇과 AI가 인간의 적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의 동반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발휘해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 필요한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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