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의 전조’ 포에니 전쟁이 끝나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6-02-04 18:12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전쟁은 평화의 시대 사이에 잠시 등장하는 막간극이 아니다. 전쟁은 본 공연의 내용마저 잊게 할 만큼 관객을 압도하는 막간극이다. 제국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제1차 세계대전은 파시즘을, 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제2차 세계대전은 한국전쟁을 낳았다. 이 기나긴 전쟁의 계보 끝 부분에 포에니전쟁(기원전 264~146년)이 있다. 100년 넘는 동안에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으로 북아프리카의 맹주 카르타고가 몰락하고 신흥 강자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페니키아인과 벌인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승자인 로마였다.
발단은 지중해 무역의 요충지 시칠리아 섬이었다. 육군 강국 로마는 막강한 해군을 보유한 카르타고에 패전을 거듭한 끝에 돌파구를 찾아냈다. 근접전을 통해 바다 위에서 육상전을 벌이는 초유의 전술로 승리하며 시칠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했다. 굴욕을 겪은 카르타고는 명장 한니발의 지휘 아래 또 한 차례 전쟁을 일으켰다. 코끼리를 앞세우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기습해온 한니발 군대의 기세에 밀린 로마군은 연패했다. 칸나이에서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 원로원은 겨울철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벼랑 끝에 몰린 로마를 살린 것은 파비우스 막시무스 장군의 지연 전술과 적의 수도를 기습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의 과감한 전략이었다. 급하게 회군한 한니발과의 자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로마는 지중해 서부의 제해권까지 장악했다. 로마에 맞서 다시 한 번 전쟁을 감행한 카르타고는 여성들의 머리카락마저 활시위로 쓸 만큼 사력을 다했지만, 2년에 걸친 로마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패배의 결과는 참혹했다. 학살 후 살아남은 주민을 모두 몰아낸 로마군은 온 도시를 불태운 후 소금까지 뿌려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이 만행은 종교전쟁 와중에 벌어진 마그데부르크 학살과 함께 ‘제노사이드 이전의 제노사이드’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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