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국회에 흔들리는 수출 전선
심기문 산업부 기자
입력 2026-02-04 18:19
“무역 합의에 안주한 국회 때문에 힘겹게 대응책을 마련해 둔 기업들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습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발표한 뒤 국내 한 수출 기업 관계자는 이같이 토로했다. 대미 핵심수출품인 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 관세와 상호관세가 종전 15%에서 한미 무역합의 전인 25%로 돌아가면 공들여 짠 사업 계획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한 탓이다.
미국이 문제 삼은 것은 한국 국회의 지지부진한 입법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발의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국회의 늑장 대응과 이를 빌미 삼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대미 관세는 미국 정부가 관보에 게재하기만 하면 즉시 25%로 치솟게 된다. 기업인들은 정치권의 실기가 낳은 피해를 고스란히 수출 현장에서 떠안게 됐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호관세가 25%로 조정될 경우 지난해 대미 수출액(1229억 달러) 기준 한국 기업의 부담 비용은 연간 123억 달러(약 17조 8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매일 500억 원이 관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고환율과 원자재값 상승으로 한계에 내몰린 영세 수출업체들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관세청이 지난해 대미 수출 중소·중견기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51.1%가 ‘관세 부과에 관한 대응 방안이 없다’고 답했을 만큼 수출업계가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한미 무역합의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이 총력을 다해 얻어낸 값진 성과다. 다음 절차를 밟아야 할 국회가 협상 타결에만 안주한 사이 경쟁국인 일본과 독일은 관세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수출 전략 수립에 매진하며 한국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어렵게 쌓아 올린 성과가 물거품이 돼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정치권이 발 빠르게 움직여 기업을 흔드는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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