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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참상에 깊은 슬픔…치유 위해 비극 기록할 것”

◆‘이란계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 인터뷰

현지 베스트셀러 ‘나의 몫’ 펴낸 작가

여성 탄압에 저항…상실감·고통 그린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국내서 주목

“이란 여성들은 억압의 시대 영웅들

시위 줄었지만 더 큰 저항 일어날 것”

수정 2026-02-05 00:10

입력 2026-02-04 18:38

지면 27면
파리누쉬 사니이 / 제공=북레시피
파리누쉬 사니이 / 제공=북레시피

이란 현대사의 상처를 문학으로 증언해 온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의 답변에는 최근 이란 사태를 향한 깊은 슬픔과 분노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나의 고향과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에게 일어난 비극으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 속에 있다”며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치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니이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이란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심경을 솔직히 털어놨다. 1949년 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소설가이자 심리학자·사회학자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이란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 활동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주요 작품이 이란 당국에 의해 판매 금지 처분을 받는 등 창작 활동이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에도 그는 이란 사회에서 고통받는 여성과 아이들, 정치·경제적 불안 속에 해체된 가족의 삶을 예리하게 파헤치며 문학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고발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니이는 현재 이란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깊은 슬픔과 분노를 드러냈다. 지난해 말 경제난으로 촉발된 이란 시위는 당국의 강경 진압 속에 이란 전역으로 확산하며 인명 피해도 크게 늘었다. 이란 당국은 최근 시위 과정에서 3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지만 인권 단체들은 실제 사망자가 최대 2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대규모 살상과 야만성 속에서 이란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상태”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는 무력감, 나만 안전한 곳에 떨어져 있다는 죄책감까지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사니이는 “과거에도 시위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전례 없이 커진 시위는 국민들의 절망과 좌절이 그만큼 깊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정권은 탄압과 살상으로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시민의 저항은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로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데 신중했던 그는 이번에는 간접적으로나마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수많은 이란 시민들이 미국 등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고 있다”며 “아이들에게까지 서슴없이 총부리를 겨누는 잔혹한 정권에 대항해 맨손으로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사니이는 이란 여성들의 저항에 주목해온 작가다. 두 차례나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그의 첫 소설 ‘나의 몫’은 이란 혁명(1978~1979년) 전후 이란 여성들이 겪은 억압과 고통,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책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이란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됐고, 전 세계 29개국에 출판됐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보카치오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년 출간한 ‘내 목소리를 숨겼다’(국내에는 2022년 ‘목소리를 삼킨 아이’로 출간)는 침묵을 택한 소년 샤허브의 이야기를 통해 이란 정권 하에서의 억압된 삶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2022년 발표하고 지난해 국내에도 출간한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에서는 고국을 떠난 이란인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상실감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는 “이란 정권은 여성의 삶을 50년 전으로 되돌리려 애써왔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저항해왔다”며 “오히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이 성장했으며 전보다 예술적이고 더욱 단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시위 과정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이란 여성들은 억압의 시대에 등장한 영웅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나의 몫’
이란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나의 몫’

모국의 비극에도 그는 작가로서의 책임과 희망을 놓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니이는 “우리가 살아남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붙잡아야 할 것은 결국 희망”이라며 “예술가의 의무는 비극을 낳은 상황을 기록함으로써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학은 그 사건이 남긴 우울과 상처, 트라우마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작품 계획도 전했다. 그는 “완성된 작품도 있고 집필 중인 작품도 있다”며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책도 이란에서는 출간될 수 없다는 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가운데는 이란에서 직접 겪은 박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도 포함돼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여러분의 지지가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꼭 전하고 싶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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