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파탄에 도달하는 6가지 경로
조지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美 부채급증에 금리 상승, 경제둔화
인플레로 긴축 불가피 위기 장기화
국채 촉발 ‘디스토피아’ 불안감 커져
수정 2026-02-06 00:00
입력 2026-02-06 05:00
미국의 국가부채가 수개월 후에 39조 달러에 도달한다. 연말에는 40조 달러 고지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만큼 태평하다. 오늘날 의원들은 그들의 임기 중에 심각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만큼 후일에 나올 결과 따위는 모른 척하자는 데 동의한 듯 보인다. 2016년 한 예산 전문가는 산더미처럼 쌓인 부채를 방치할 경우 발생할 심각한 재정적 결과에 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20분간 브리핑을 했다. 그러나 브리핑이 시작된 지 불과 5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때쯤 나는 이미 이 자리에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비영리단체 ‘책임있는연방예산위원회(CRFB)’는 꿋꿋하게 경고음을 내고 있다. CRFB는 최근에도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여섯 가지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들 중 다섯 개는 극적이다. 여섯 번째 시나리오는 조금 덜 심각하지만 가장 우려스럽고 실현 가능성 또한 가장 높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부채는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미국의 재정 전망에 불안감을 느끼는 투자자들은 국채 매입을 유도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부채 증가를 가중시키는 도화선에 스스로 불을 붙이는 셈이다.
고금리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세수를 줄이는 동시에 부채 상환을 위한 정부의 지출을 늘린다. 신규 부채에 대한 금리 인상은 더 규모가 큰 기존 부채의 가치를 대폭 축소시킨다. 이렇게 되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다. 이들은 너무 커서 망하게 내버려 둘 수 없는 이른바 ‘대마불사’ 기관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구제금융이 불가피하고 여기에 경기 부양을 위한 지출이 맞물리면서 금융위기가 유발된다.
천문학적 액수의 부채는 인플레이션 위기를 일으켜 채권자에게 가치가 하락한 달러로 빚을 상환함으로써 기존 부채의 실질 가치를 축소시킨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투자자들의 기대에 반영될 것이고 이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것이다. 이처럼 부채에 적용되는 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면 금리 상승이 경제성장을 억누르면서 위기가 심화한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세금 인상이 지출 삭감과 결합하면 긴축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침체에 대응할만한 능력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는 국가에서 긴축정책은 극히 드문 일이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 가운데 보통선거 시대 이후 긴축정책으로 국가부채를 크게 떨어뜨린 사례는 캐나다에서 딱 한 번 있었다.
통화위기는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외국 정부와 민간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서 벗어나 자산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결과로 발생할 수 있다. 채무불이행 위기는 발생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원금만 계속 상환하고 이자는 지급하지 않거나 정부가 일부 부채를 아예 상환하지 않는 ‘구조조정’을 불러온다. 가장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불길한 결과는 점진적 위기일 것이다. 2021년 채무상환액은 연방세수의 10% 미만이었으나 2025년에는 18%로 늘어났다.
점진적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국민 사기 저하, 지속적인 경기 침체, 연구개발 부문 투자 감소, 사회적 정체, 재능 있는 이민자들의 기업가적 역량 기여도 축소 및 미국의 지정학적 영향력 감소로 서서히 이어질 것이다. 이는 미국 정치 문화의 회복적 개혁을 촉발할 수 있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신 이 같은 정치 문화는 더욱 강한 독성을 품게 될 것이다. 정치권력은 한 정파의 이익이 다른 정파의 손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제로섬게임’처럼 절박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쟁취되고 행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더욱 강력해지고 분열적이 되는 동시에 정당성이 약화한다. 화폐는 모든 사람이 매일 정부와 접촉하는 수단이며 이는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신뢰할 만하다는 암묵적이고도 명백한 약속을 전제로 한다. 인플레이션보다 더욱 맹렬하게 국가를 뒤흔드는 요인은 없다. 인플레이션은 앞서 언급한 모든 위기의 구성 요소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통화가 더 이상 가치저장 수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지금의 불법 이민자 추방 사태 못지않게 대중을 불안하게 만든다. 사방 어느 곳에나 조용히 퍼져 있는 인플레이션은 특히나 불길한 느낌을 주고 모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미국 국채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결과는 언젠가는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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