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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서 K팝 공연 보고싶었는데”...여권까지 보여주며 외국인 팬 등친 ‘티켓 사기단’

수백만 원 갈취 지능범죄 기승

위조 신분증에 반복 송금 유도

외국인은 손쉬운 먹잇감 전락

수정 2026-02-06 10:53

입력 2026-02-05 19:07

지면 25면

“한국이 싫어졌어요” K팝 덮친 초대형 악재, 외국인 팬들 줄줄이 ‘탈덕’ 선언한 이유

“결제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한 번에 많은 송금이 들어와 우리 쪽 계좌가 잠시 정지돼서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우리나라에 입국해 3개월째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인 클로에(22·가명) 씨는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아이돌 ‘제로베이스원’ 콘서트를 가기 위해 한 업자에게 대리 티케팅을 의뢰했다. 업자가 요구한 착수금 20만 원을 송금했지만 업자는 “기존 입금액은 재무팀에서 환불할 테니 일단 새 계좌로 다시 보내라”며 추가 송금을 유도했다. 불안해하는 클로에 씨에게는 ‘김미소’라는 한국인 이름이 선명한 여권 사진을 보내 안심시켰다.

당초 20만 원이던 입금액은 이런 방식으로 고가의 숙박 패키지가 포함된 6장의 티켓값을 보내는 동안 훌쩍 불어났다. 총액의 20%인 대리 티케팅 서비스 수수료까지 도합 300만 원이 넘어갔다. 그러나 약속된 티켓은 5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환불을 요구하자 업자는 “연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둘러대더니 돌연 잠적했다. 뒤늦게 사기를 인지한 클로에 씨가 “고소장을 제출하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소용없었다. 당초 거래를 위해 접촉했던 X(옛 트위터) 계정도 이미 삭제돼 사라진 뒤였다.

K팝 문화의 세계적인 인기를 틈타 외국인 팬들의 간절한 마음을 겨냥한 ‘콘서트 대리 티케팅’ 소액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한국의 복잡한 예매 시스템과 언어 장벽에 가로막힌 외국인들의 정보 비대칭성이 범죄에 악용되는 양상이다.

5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아이돌 그룹 등의 공연 티켓을 미끼로 팬심을 악용해 인당 최대 수백만 원을 가로채는 사기성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일 클로에 씨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메신저 대화 내용과 송금 내역, 여권 사진 등 증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중이다. 더치트와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수금에 활용된 국내 계좌는 비슷한 시점 다른 국내 아이돌 그룹 티켓의 양도를 두고도 금액을 갈취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돼 있었다. 피해를 입은 30대 직장인 A 씨는 “여성 아이돌 ‘르세라핌’ 콘서트 예매를 시도하다 해당 계정이 티켓값을 송금받은 후 잠적했다”고 전했다.

사기꾼들은 주로 X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점 삼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차 입금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기망 행위가 시작된다. 각종 핑계를 대며 반복적인 송금을 유도하는 식으로 갈취 규모도 빠르게 키운다. 피해자가 의심을 제기할 때는 “앞서 입금한 돈은 다른 부서로 입금돼 48시간 이내에 자동 환불될 것”이라거나 “상사에게 확인 중”이라며 시간을 번다. 필요하면 도용·위변조 신분증을 제시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이런 수법은 이미 국내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형태의 사기다. 하지만 외국인 팬들에게는 얘기가 다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예매 시스템과 금융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사기 범죄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가뜩이나 대리 티케팅은 실물이 없는 서비스를 거래하는 특성상 사기에 매우 취약하다. 한 대중음악계 관계자는 “빠르면 수 초 만에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아이돌 그룹 콘서트 예매는 마음이 간절한 탓에 구매자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이 확대되는 속도를 예매 시스템과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외국인 팬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민우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K팝 허위 티케팅 등 관련 범죄가 외국인에게 유독 취약한 것은 이들이 공식 판매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관련 설명도 대부분 한글로 돼 있기 때문”이라며 “영어를 포함한 다국어 서비스 지원을 활성화해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이 싫어졌어요” K팝 덮친 초대형 악재, 외국인 팬들 줄줄이 ‘탈덕’ 선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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