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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지를 아시나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檢 보완수사는 강압과 직결 안 돼

기록 외 진실 강조한 ‘육조지’처럼

수사 녹화 의무화 등 해법 찾기를

수정 2026-02-08 17:20

입력 2026-02-09 05:00

지면 29면
양중진 변호사
양중진 변호사

초임 검사 시절 선배들이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중에 ‘육조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 수형자는 먹어 조지고, 교도관은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이야기였다.

집에서는 재판 비용을 마련하느라 세간을 팔고 수형자는 수형 생활을 견디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식을 사 먹는다는 것이었다. 또 교도관은 혹시 모를 도주를 막기 위해 틈만 나면 수형자 숫자를 헤아리고 형사는 증거의 왕이었던 자백을 받기 위해 폭행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검사는 보강 조사를 한다며 피의자를 여러 번 소환하고 판사는 어떻게든 선고를 늦추기 위해 재판 기일을 미룬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소설가 정을병 선생께서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것은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기록 너머에 숨어 있는 진실이나 사연, 빠진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이 이유였다. 또 경찰 조서와 검사 조서의 증거능력이 다르니 이를 보강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필자도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소환 조사를 해보면서 숨은 진실과 사연을 들을 수 있었고 사건 너머에 있는 사람도 보게 됐다.

검사 조서의 증거능력은 2022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사라졌다. 법정에서 증거로 쓰는 것에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휴지 조각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경찰에서 조사한 피의자나 참고인을 다시 조사할 명분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기록 너머의 진실과 사연도 사라졌을까.

그런데 그 무렵부터 기록 너머를 보는 일에 소홀해졌다. 여기에는 다른 제도의 개정이 큰 몫을 했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보완 수사 요구가 원칙으로 정해진 것이다. 검찰의 직접 보완 수사 대신 원칙적으로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폐단이 속출했고 얼마 후 보완 수사 요구 원칙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최근 검찰청의 공소청 전환과 관련해 이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첫째는 경찰에서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도 검찰에 보내 한 번 더 보게 할 것인지다. 둘째는 경찰에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해 검찰에서 직접 보완 수사를 하게 할 것인지다. 근저에는 강압이라든가 조작 혹은 편향성을 의심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편향성의 문제는 검찰이 처음부터 범죄를 수사하는 인지수사를 못 하게 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드는 것으로 논의가 정리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에서 보완 수사를 안 하면 강압이나 조작이 해결될까. 이는 검찰의 인권 보장 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연결돼 있다. 혹시 모를 경찰 수사의 허점이나 문제점을 다시 들여다보는 장치가 필요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는 검사 생활을 할 때 오래전부터 영상 녹화를 많이 활용해왔다. 수사의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해 강압이나 조작의 의심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검찰이 피의자나 참고인을 소환해 보완 수사를 할 때 영상 녹화를 의무화하면 강압이나 조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수사 통제 기관과 인권 보호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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