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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약 등 신종마약 심각…사회 경계심 무너진 탓”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

비만약 등으로 둔갑, ‘좀비담배’도 유통

의료용 마약 악용 등 다양한 형태 노출

‘마약 김밥’ 용어, 외국선 상상도 못해

휴대용 검사 키트 개발 ‘독성학 전문가’

청소년, 드러나지 않는 ‘암수율’ 주목을

약물 선별 신뢰성 높이는데 전력할 것

수정 2026-02-09 23:54

입력 2026-02-10 07:30

지면 27면
정희선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정희선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처럼 음식 이름에 ‘마약’을 붙이는 건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마약이 곧 범죄라는 심리적 경계선이 무너졌다는 무거운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희선(사진)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9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일상으로 파고든 마약의 심각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썬 사건’ 등과 관련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졌다는 의미”라며 “의료용 마약을 악용하는 사례들 포함해 주변에서 다양한 형태로 마약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독성학 분야 전문가인 정 교수는 마약 분석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제11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과 연구원 승격 이후 초대 원장을 역임한 데 이어 한국인 최초로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국제과학수사 자문위원을 지냈다. 국내 최초로 소변에서 필로폰을 검출하는 시험법 개발과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휴대용 마약 검사 키트를 개발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에는 국제법독성학회(TIAFT)가 수여하는 앨런 커리상(Alan Curry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교수는 한국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지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 사범은 2만 3403명을 기록했다. 유형별로는 밀수 사범이 1772명으로 2021년(807명)보다 2배가량 급증했다. 외국인 마약 사범도 3298명으로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는 “과거에는 마약이 특정 소수에게만 유통됐다면 최근 다크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그로 인해 오남용되는 사례들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청소년 마약사범이 증가하는 현상을 특히 우려했다. 청소년일수록 드러나지 않은 마약사범이 많고 장기간 중독자로 살아가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부모의 보호로 청소년일수록 드러나지 않은 범죄, 즉 암수율(暗數率)이 성인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이 크다”며 “청소년기 마약에 노출되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뇌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어린 나이에 마약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국가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 마약이 확산하는 원인으로는 심리적 경계심이 낮아진 점을 꼽았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판매하는 ‘마약 김밥’처럼 음식이름 앞에 ‘마약’을 붙이는 행위 등이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마약 인식조사에서 ‘김밥’과 ‘마약김밥’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 ‘마약김밥’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답변이 압도적 많았다”며 “이는 혹시 마약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는 ‘맛있겠다’는 생각이 앞선 만큼 성인이 됐을 때 마약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정 교수는 신종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최근 연예인 일부를 통해 알려진 ‘나비약’이 대표적이다. 나비약은 마약성 식욕 억제제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하지만 시중에서 불법 유통되면서 오남용과 부작용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좀비담배’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용 전신마취 유도제인 에토미데이트 성분을 첨가한 액상 담배인 좀비 담배는 정식 수입허가 없이 국내로 유통돼 사회적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정 교수는 “범죄자들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성분을 뒤섞는 ‘디자이너 드러그(Designer drug)’ 방식으로 펜타닐과 같은 신종 합성마약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며 “매년 수십여종의 합성 마약이 생겨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유통되는 마약류는 총 2000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 규제를 받는 마약류는 650여종 수준으로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마약 퇴치를 위한 방안으로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단속도 중요하고, 환자 치료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라며 “예방을 하지 않고는 ‘마약 청정국’으로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마약류 중독검사 시스템을 정교화하는 등 관련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30여개 직종의 자격 또는 면허를 취득하거나 경찰·공무원 및 선원을 채용할 때 마약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했다가 양성반응이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마약에 불안한 사회가 되면서 검사도 철저해야 하지만 동시에 억울한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모든 약물을 선별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 오승현 기자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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