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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투자 요구, 수세적 접근보다 수익 창출 기회로 삼아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美 IP·韓 제조’ 융합 투자로 성장 모멘텀 가능

보조금 등 산업정책 적극 펴 마더팩토리 유치를

韓 ‘EU-CPTPP 연결’ 역할시 거대 시장 열려

환율, 기초체력 문제…규제 풀어 역동성 높여야

입력 2026-02-09 18:14

지면 29면
민병권

민병권

논설위원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미투자를 비용이나 리스크로만 보지 말고 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미국발 성장 슈퍼사이클에 올라타 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미투자를 비용이나 리스크로만 보지 말고 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미국발 성장 슈퍼사이클에 올라타 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우리나라 경제가 요동치는 대내외 여건 속에 도약과 위기의 갈림길에 섰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미 무역 협상의 합의 내용 중 우리 측 대미 투자 이행 지연을 문제 삼아 상호관세율을 25%로 재인상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 큰 난제다.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투자 요구를 리스크나 비용으로 보는 수세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원전, 양자 기술,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발(發) 성장 슈퍼사이클에 올라타 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정책 당국이 우리 기업들과 긴밀히 소통해 미국의 공급망에서 핵심 파트너 지위를 선점할 수 있는 투자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이를 트럼프 측에 먼저 제안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면서 “미국의 투자 수요에 따라 ‘산업보완형’ ‘재건기여형’ ‘기술확산형’ ‘공급망협력형’의 맞춤형 산업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보완형 협력 투자는 미국이 보유한 핵심 지식재산권(IP)들을 우리의 제조 역량과 융합해 상업화하는 형태다. 재건기여형은 미국의 낙후된 산업 인프라를 재구축하는 데 투자 파트너로 참여하는 전략이고 기술확산형은 미국의 혁신 기술을 우리의 상용 플랫폼에 융합해 국내 산업계에 이전하는 방식이다. 공급망협력형은 미국의 광물·백신 공동 비축 및 에너지 프로젝트(소형모듈원전·LNG)에 참여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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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가 직면한 대외 여건은.

△지난 80여 년간 국제 질서를 지탱해온 자유주의 규범이 점점 멀어지고 비(非)자유주의 질서가 고착화하고 있다. 경제 측면에서는 미국이 올해 선진국들 중 유일하게 2%대의 성장률을 달성하며 우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성장은 금융 완화 정책 기조와 AI 산업 부문의 대규모 투자 등에 기인한다. 우리 산업계도 미국의 AI 산업 생태계에 진입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선별적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입법 지연을 문제 삼으며 관세를 25%로 환원하겠다고 압박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상호관세 위법 여부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미 대법원을 압박하려는 의도다. 즉 상호관세 협상의 결과물인 외국인 직접 투자를 빨리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11월 중간선거에 활용할 가시적 경제 성과를 내려는 의도다. 이대로라면 하원 다수당을 민주당에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전략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 당국은 국회의 법안 처리만 기다릴 게 아니라 일본처럼 선제적으로 미국 측에 투자 실행 의지를 보이는 제스처를 취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의 반도체 관세 부과도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반도체에 100% 세율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도체를 수입하는 미국 기업들이 반대하는 데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압박으로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이달 중 나올 예정이다.

△미국 대법원은 그간 판례를 통해 대통령의 외교적 재량권을 상당히 인정해줬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급격한 관세 부과에 대해 ‘전체 위법’보다는 ‘부분 위법’ 판결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관세 환급을 하지 않는 수준에서 제한적 위법 판결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부분 위법이 아닌 전체 위법 판결이 나더라도 우리 수출 기업들이 자동으로 즉각 관세를 환급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 미국 행정부가 관세 환급 신청 요건과 절차를 까다롭게 해서 문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어쨌든 ‘관세 위법’ 판결이 나오면 우리에게 좋은 것 아닌가.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라이선스(수입 허가증)’ 등 비관세장벽으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들을 압박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일정 세율의 관세를 부과받는 것보다 대미 수출이 더 어렵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플랜B’, 즉 무역법이나 관세법의 관련 조항들을 발동해 상호관세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형해화됐다.

△기존 다자주의 무역 질서가 퇴조했다. 소(小)다자주의 무역 협상 체제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이 대표적 소다자 그룹이다. 근래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한국경제연구원 콘퍼런스에서 한 토론 패널이 “CPTPP와 유럽연합(EU)의 멤버가 아닌 한국은 양측 간 연결 다리 역할을 하기에 좋은 나라”라며 한국 역할론을 강조해 큰 호응을 받았다. 우리가 이를 주도하면 EU의 27개 회원국과 CPTPP 12개 회원국을 연계하는 거대한 시장을 열 수 있다. 한중 및 한중일 FTA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끼리 무역자유화를 고도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국을 상대로 관세·안보 압박을 지렛대로 삼아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마러라고 합의’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대두된다. 국제 통화·금융 질서의 향방을 전망해달라.

△달러 패권에 ‘구조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재정적자 문제와 함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독립성 이슈가 불거져 달러의 신뢰를 저하시켰다. 미국 제재 표적이 된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 중심의 결제망에서 분리된 자체 화폐 결제망을 구축 중이다. 그밖의 나라들도 자체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모색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자산 토큰화 기술이 발전했다. 달러 기반 통화 공급망을 우회할 경로가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달러 패권은 견고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미국을 대체할 만한 규모와 성숙도를 갖춘 자본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미중 무역 대결 구도를 어떻게 전망하나. 한국의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는 당분간 중국과 ‘안정적 봉합’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상쇄할 대응 카드를 마련할 때까지 정면충돌은 자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시적 휴전’이다. 미국이 대응 카드를 마련하면 대중국 견제를 다시 강화할 것이다. 한국은 최근 미국 주도의 55개국 핵심 광물 공급망 국제 연대 ‘포지(FORGE·전략적 자원 협력 포럼)’에서 초대 의장국이 됐다. 이와 동시에 중국과 공급망 협력 채널은 열어둘 필요가 있다. 핵심 광물 공급망의 탈중국화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급격히 출렁이고 있다.

△한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한미 간 이자율 격차 감소에도 원화 약세,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졌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미 간 실물경제 기초 체력의 차이다. 미국에서는 빅테크들이 AI 혁명을 선도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를 현지 자본시장과 인재시장이 뒷받침해 실물경제의 역동성이 높아졌다. 반면 우리 경제는 저성장 구조에 빠졌다. 저출생·고령화, 기업 규제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렸다. 예를 들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담은 상법 개정으로 잠재적 소송 리스크를 떠안은 기업 경영진들은 적극적 투자 판단을 내리기 힘들게 됐다. 상법상 감사위원 분리 선출 조항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현실적 수용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렇게 경영하기 어려워지니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우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ODI) 규모에 크게 못 미치게 됐다. 규제 해소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야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살아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나.

△‘공세적 산업 정책’을 적극 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생산 기반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보조금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주요 기업들의 마더팩토리(글로벌 생산 체제의 중심축이 되는 공장)와 연구개발센터를 국내에 적극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안보 정책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첫째는 공급망 안정화, 둘째는 데이터 및 핵심 인프라 보호, 셋째는 핵심 기술 해외 유출 방지다. 이 세 가지는 전 세계 주요국들이 펴고 있는 경제안보 정책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입법으로 실행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소모했다. 지원 규모도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핵심 법안인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급망안정화기금도 10조 원 규모로 늘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직접 보조(투자)’가 아닌 수출입은행의 ‘대출’이다.

He is...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남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유타대에서 경제학 석사,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계은행 정책연구부 경제자문을 지냈다. 국내 대표적 국제통상 전문가로서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국제통상학회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 기획재정부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위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자문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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