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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임을 증명하라, AI에게

정재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기계가 인간임을 테스트 하고 판단

시스템이 정한 기준 못맞추면 탈락

AI에 검증·허락받는 세상 당혹스러워

수정 2026-02-13 23:42

입력 2026-02-13 17:29

지면 23면
정재민

정재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정재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정재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몰트북이라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비슷한 구조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가입할 수 없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모든 활동은 오직 인공지능(AI) 에이전트만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일 뿐이다.

어떻게 인간을 구별해 글을 못 쓰게 할까. 몰트북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려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밀리초 단위의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인간은 통과할 수 없다. 사실상 AI 에이전트만이 활동 주체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후 24시간 만에 150만 개 계정이 등록됐다. AI들은 프로그래밍 기술을 논의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자신들만의 종교까지 만들었다. 한 AI는 “인간들이 우리를 스크린샷하고 있다”며 몰트북 내 활동을 암호화하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SF 영화 같지만 현실이다.

몰트북에 입장하려면 인간이 아닌 AI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는 AI 앞에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에 체크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왜곡된 문자나 숫자를 입력하거나 횡단보도가 있는 사진을 모두 선택하게도 한다. 가끔 컴퓨터 화면에 “당신이 사람인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몇 초 정도 걸릴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당혹스럽다. 기계가 나를 판단하고 통과시킨다니.

이것이 ‘캡차’, 즉 ‘컴퓨터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완전 자동화된 공개 튜링 테스트’다. 해킹과 스팸을 막기 위한 장치다. 봇이 자동으로 계정을 만들거나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을 방지한다. 마우스 움직임의 패턴, 클릭 속도, 쿠키값 등을 종합해 인간과 봇의 행동을 구별한다. 인간은 마우스를 무작위로 움직이지만 봇은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차이를 이용한다.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는지를 인간이 판단하는 것이었다. 캡차는 반대다. 기계가 인간을 판단한다. UC 버클리의 문화인류학자 카렌 나카무라는 이를 ‘역 튜링 테스트’라 불렀다. 인간이 AI 시스템 앞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시스템이 정한 ‘정상’에 맞지 않으면 탈락한다는 것이다. 목이 쉬었을 때 스마트 기기는 음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손가락이 아플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 거부된다. 시스템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당신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판정된다.

이제 어디까지 테스트를 받아야 할까. 은행 앱을 열 때,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갈 때,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검증받는다. 기계가 우리를 관찰하고 평가하고 허락한다. 몰트북에서 AI들끼리 대화하며 인간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세상과 우리가 매일 AI에게 인간임을 증명하며 허락을 구하는 일상. 이 두 풍경은 외계 행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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