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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편견

|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입력 2026-02-19 07:01

지면 30면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의사의 편견은 여러 과정에서 발생한다. 환자를 진료할 때 무의식적으로 개입되는 고정관념, 과거의 경험에 따른 회피, 의사 자신의 육체적 피로에 의한 환자 상태의 단순화 등. 환자가 입고 있는 옷이나 문신 여부, 비만 정도와 같이 외모에서 비롯되는 편견도 흔하다. 간혹 구금시설에 수용 중이던 환자가 외래 진료를 오거나 입원할 때면 담당 공무원이 동행한다. 공무원이 입은 제복이 내뿜는 엄숙함, 환자가 입은 수의가 만든 긴장감이 더해지면 병실 안 공기마저 묘해진다. 회진을 할 때마다 환자가 시설로 돌아가기 싫어 증상을 과장하지 않을까, 영화나 드라마 속처럼 꾀병, 난동, 탈출 등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제멋대로 뻗어가지만 수십 년 병원 생활 중 단 한 번도 그런 일들이 실현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환자를 의심하고 삐딱한 시선이 앞설수록 진료는 갈피를 잃게 된다. 경험이 조금 쌓이고 나서야 그저 몸이 불편한 환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입고 있는 옷이 아닌 환자의 얼굴과 아픈 몸에 더 집중하게 됐다.

환자의 신념 앞에서도 편견은 쉽게 작동한다.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치료를 위해서는 수혈이 불가피하다고만 여겼다. 거부하면 치료할 수 없다는, 돌이켜보면 오만하고 거친 말까지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왔을까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환자의 신념을 존중하는 일은 의사의 호의가 아닌 의무임을 뒤늦게 배웠다.

15년 전쯤 간이식이 필요하지만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를 다시 만났다. 당시 나는 과거의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환자의 신념을 전제로 수술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경험 많은 의료진의 조언을 구하고, 문명의 도움으로 축적된 지식과 근거를 확인했다. 의학은 정답을 강요하는 기술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도 가능한 길을 찾는 실천임을 그 때 배웠다. 무엇보다 내 안의 편견이 얼마나 쉽게 ‘최선’의 이름을 빌려 말하는지 통렬하게 돌아보게 됐다. 지금은 환자들의 신념이 존중받고 그에 걸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드리려 노력한다.

특수한 치료 환경도 수많은 편견을 낳는다. 생체 간이식이 대표적이다. 가족 등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간 기증 의사를 밝히고 외래를 찾은 사람에게, 의사의 설명은 때로 ‘강요’처럼 들릴 수 있다. 충분히 설명한다는 선의가 상대방에게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내가 많이 말하는 것보다 상대가 말할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이식 대기 환자의 질문을 기증 희망자가 대신 전달할 때라면 정보 전달의 정확성만큼 관계의 비대칭을 경계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 오히려 ‘당신이 간을 기증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은 의사를 성장시킨다. 익숙함은 판단을 빠르게 하지만 때로는 시야를 좁힌다. 경험이 쌓일수록 편견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는 교만에 빠지기 쉽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편견은 대개 오래된 경험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경험이 새로운 편견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제 ‘편견 없는 의사’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택한다. 내 판단이 너무 빠를 때 한 번 더 멈추고, 내 확신이 너무 단단할 때 다시 묻는 것. 편견은 사라지지 않지만 관리할 수는 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먼저 보게 하는 힘은, 결국 그 관리의 반복에서 나온다. 편견 속에 사는 의사 최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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