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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국가부채 잇단 경고…“부채비율 60% 넘으면 저금리 함정”

BIS “확장재정 땐 이자부담 커져

물가 불안해도 금리 못 올릴 수도”

IMF·무디스 “韓, 5년내 60% 돌파”

日·佛처럼 산업경쟁력 저하 가능성

연초 국고채 들썩…한은도 예의주시

수정 2026-02-18 23:40

입력 2026-02-19 05:30

지면 4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 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 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나라의 국가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사실상 마비된다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국가부채가 급등하면 나라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제약이 생기고 이에 따라 물가나 고용과 같은 통화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최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2030년 60%를 넘길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재정 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BIS는 18일 ‘축소되는 재정 여력의 위험’ 보고서를 통해 정부 부채가 GDP 대비 약 60%를 웃도는 구간부터 재정의 완충 능력이 빠르게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1960년 이후 미국의 장기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미국의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은 지난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2004년을 기점으로 60%를 넘어섰고 2024년 122.3%를 기록해 20년 만에 2배 급증했다. 당시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국방비를 급격히 늘리는 과정에서 감세 정책까지 동시에 펼치면서 확장재정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등의 위기를 거치면서 국가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족쇄가 채워진다는 점이다. 만약 부채가 급등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다. 국채 발행과 차환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만을 기준으로 금리를 결정하기 어려워지고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사실상의 상한선이 된다는 게 BIS의 설명이다.

BIS는 특히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을 우려했다. 시장이 ‘중앙은행이 재정 부담 때문에 금리를 상한선까지 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이 믿음 자체가 실제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BIS는 이런 악순환이 굳어지면 물가가 목표치(2%)를 웃도는 수준이 일상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이런 함정에 빠진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D2 비율은 GDP 대비 229.6%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금리를 올리면 정부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금리를 억제하면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지는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에 일본은행은 시중에 풀린 국채뿐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까지 사들이며 초저금리를 유지해왔지만 이런 정책이 도리어 저금리에 기댄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산업 혁신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부채비율이 116.5%에 달하는 프랑스도 산업 혁신이 뒤처지는 대표적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한국도 이 같은 재정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아직 GDP 대비 50%를 밑돌지만 오름세가 가파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8년 처음으로 60%를 넘긴 뒤 2030년 64.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무디스도 2019년 35%였던 부채비율이 2025년 거의 50%까지 오른 데 이어 2030년에는 60%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부채를 밀어 올리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고령화에 따른 연금·건강보험 등 의무지출 증가, 국방·안보 지출 확대에 더해 대미 투자 협정 이행에 따른 대미 투자 부담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무디스는 2042년 한국의 고령 인구 비중이 43%에 달해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봤고 국가데이터처는 2072년 이 비중이 47.7%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GDP의 17%를 넘는 공기업·공공기관(비금융 공공 부문) 부채도 잠재적 뇌관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최근에는 주식시장으로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나며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9일 연 3.267%, 10년물은 3.754%까지 올라 연중 고점을 기록했다. 가뜩이나 국가부채비율이 급등하는 가운데 시중금리까지 흔들리면 우리 경제 전반의 위기 대응 능력이 나빠질 수 있다.

한국은행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금융통화위원은 “현재로서는 재정 우위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발생 가능성과 영향을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부채비율이 빠르게 상승하면 신용 리스크에 따라 국채금리가 계속 오르게 되고 통화 당국은 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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