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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다음을 기다리며

김경훈 AX콘텐츠랩 디지털편집부장

외면받던 포털 다음, AI 스타트업이 품어

검색 저물고 ‘답변 엔진’ 개막 상징성 커

데이터 자산 기반 ‘소버린 AI’ 비상하길

수정 2026-02-19 23:55

입력 2026-02-19 16:23

지면 30면
김경훈 디지털편집부장
김경훈 디지털편집부장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

때는 포털 춘추전국시대. 점유율 영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는 업체들 간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던 1999년 7월. 주요 일간지에 눈길을 잡아끄는 파격적인 문구의 광고가 실렸다.

당시 국내 포털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외국계 공룡 야후를 정면으로 겨냥한 이른바 ‘도발 마케팅’. 주인공은 무료 e메일 서비스를 운영하던 한메일넷에서 이름을 바꾸고 포털 전쟁에 참전한 다음이었다.

‘우리 인터넷 영토는 우리가 지킨다’는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한 광고의 효과는 직접적이고 또 엄청났다. 신생 벤처였던 다음의 인지도는 단숨에 급상승했고, 2000년대 초반 곧바로 야후를 끌어내리고 국내 포털 1위에 오르는 발판이 됐다.

광고도 광고였지만 다음을 왕좌에 올려놓은 진짜 주역은 한국인의 일상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강제 소환한 ‘한메일’과 ‘다음 카페’라는 든든한 두 날개였다.

메일 계정을 만들지 않으면 문명사회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나왔고, ‘다음 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라는 질문이 인사말로 통할 만큼 한메일 주소는 사람들의 신분증이 됐다. 그렇게 다음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다음 카페’에서 목소리를 나누며 포털 서비스, 인터넷 검색이라는 신문물을 접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다음 천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4월. 지금까지도 ‘희대의 헛발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온라인 우표제’를 시행하는 뼈아픈 실책을 범한다. 스팸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1000통 이상 메일 발송 시 1통당 10원의 비용을 부과하자 이용자들은 무료인 네이버로 대거 이탈했다.

이후 인터넷 산업에서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매번 한발 늦은 움직임으로 뒤처지던 다음은 2014년 8월 카카오와의 합병이라는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운다. 다음의 포털 콘텐츠와 카카오의 모바일 기반을 합쳐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사업 전개는 예상과는 달랐다. 다음 서비스는 하나둘 사라지거나 카카오 서비스로 통폐합됐다. 다음의 콘텐츠나 서비스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이용자 입장에서는 다음을 이용할 필요가 점점 없어졌다.

지난해 5월. 카카오는 다음을 담당하는 콘텐츠CIC(사내 독립 기업)를 분사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독자적인 경영 구조를 기반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거추장스러운 짐이 돼버린 다음을 몸통에서 떼 내버린 모양새가 됐다.

그런 다음에 손을 내민 것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였다. 혁신이 필요했던 다음과 데이터에 목말랐던 업스테이지의 만남을 두고 업계에서는 운명적이라는 말도 나왔다.

“다음의 콘텐츠 데이터에 AI 기술을 적용해 차세대 플랫폼 전환을 추진한다.” 1995년 1세대 검색엔진 ‘까치네’를 개발했던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의 선언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포털 중심의 인터넷 산업 구조가 AI·데이터 중심 구조로 이동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생태계를 지배해온 ‘키워드 검색’ 시대의 종언과 생성형 AI가 주도하는 ‘답변 엔진’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업스테이지의 대규모언어모델(LLM) ‘솔라’가 다음이라는 방대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이식되는 순간 다음은 더 이상 검색 결과를 나열하는 수준의 포털에 머물지 않는다.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무수한 문서를 실시간으로 독해해 완결된 답을 내놓는 ‘지능형 에이전트 포털’로 변모하게 된다.

30년간 축적된 다음 카페와 티스토리의 한국어 데이터는 다음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자산으로 꼽힌다. 그간 잠들어 있던 이 데이터들이 업스테이지의 기술력과 만나 한국인의 정서와 생활 밀착형 지식을 가장 잘 이해하는 AI 서비스로 구현된다면 외국 AI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소버린 AI(AI 주권)의 표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나온다.

“포털 다음은 업스테이지의 최첨단 엔진을 장착하고 다시 화려하게 비상했을까?” 이 질문에 AI는 머지않아 답을 내놓을 것이다. 다음의 다음은 어떻게 적힐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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