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공직 추천
입력 2026-02-23 17:56
최형욱
논설위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을 스스로 추천해 고위 공직자에 오른 사례는 적지 않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에는 유세객들이 군주나 제후를 찾아다니며 자신을 중용해달라는 자천(自薦)이 흔했다.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은 진나라가 공격하자 동생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하려 했다. 이때 모수가 사신단 동행을 자처했다. 평원군이 “무릇 뛰어난 인재는 ‘낭중지추(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저절로 드러난다”며 거절하자 모수는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면 바로 뚫고 나올 것”이라고 설득했다. 결국 모수는 뛰어난 언변으로 초나라 왕을 설득했고 조나라 상객(上客)으로 대우받았다. 고사성어 ‘모수자천’의 유래다.
다만 군주가 지배하고 겸양의 미덕이 중요한 왕조 국가에서 공직을 달라는 공개 요구는 자칫 역린을 건드릴 수 있는 행위였다. 이 때문에 신하가 상소나 계책을 군주에게 올려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은연중 강조하는 것이 자천의 일반적 형식이었다. 위·촉·오 삼국시대 삼고초려로 찾아온 유비에게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니콜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피렌체의 최고권력자인 메디치 가문에 헌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송나라 왕안석은 인종 때 정치개혁안을 올렸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세의 젊은 신종이 즉위한 뒤에야 권력 핵심부로 진입했다. 우리나라도 고려 성종 때 능력 있는 인재가 스스로 천거할 수 있도록 하는 자천제를 도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 과거제 정착으로 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되고 검증 절차 미비 등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점차 소멸됐다.
김인호 산림청장이 산불 조심 기간에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가 직권면직됐다. 김 청장은 이재명 정부가 도입한 ‘국민추천제’를 통해 본인을 셀프 추천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부각해 구설수를 낳았다. 지금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낭중지추’보다 ‘모수자천’이 더 효율적인 인재 등용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재 채용 방식이나 최고권력자와의 친분보다 해당 인물의 능력과 비전이 더 중요하다는 점은 변함없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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