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은 ‘구조’가 만든다
■김민태 신영증권 연금사업부장
입력 2026-02-23 18:07
퇴직연금 상담에서 가장 흔한 질문은 “어떤 상품이 좋아요?”이다. 수익률이 낮으면 상품 탓으로 돌리고, 변동성이 크면 위험한 상품을 선택한 결과라고 느낀다. 그러나 퇴직연금의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특정 상품이 아니다.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장기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은 개별 상품이 아니라 자산배분 구조다. 같은 시장 환경에서도 주식·채권·대체자산의 비중을 어떻게 설계했는지가 수익의 방향을 결정한다. 장기 누적 성과는 단기 상품 간의 수익률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해외 연금 선진국은 이 ‘구조’를 기본값으로 설계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 제도인 401(k)에서는 자동가입과 기본투자옵션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7년 도입된 적격디폴트투자상품(QDIA)은 가입자가 별도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생애주기형 포트폴리오(TDF) 등에 자동 편입되도록 허용한 장치다. 그 결과 신규 가입자의 상당수는 별도의 선택을 하지 않아도 연령에 맞는 자산배분 구조에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이는 특정 ‘유망 상품’의 성과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험을 관리하는 구조, 즉 ‘글라이드 패스’가 장기 성과의 토대임을 보여준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의 연금 자산은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증가해왔다. 자산배분 역시 채권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주식과 대체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이는 단기적인 가격 변동성보다 은퇴 이후의 실질 구매력 유지에 초점을 둔 구조적 선택의 결과로 해석된다.
반면 국내 퇴직연금은 여전히 상품 단위 선택에 머무는 경향이 강하다. 정기예금, 이율보증형 상품,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한 계좌에 혼재돼 있어도 이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설계·관리한다는 인식은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다. 주식형 상품을 여러 개 담더라도 동일 시장에 중복 노출되는 경우가 있고, 채권이나 대체자산 비중이 과도하게 낮게 설정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상품은 골랐지만 구조는 설계하지 않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퇴직연금은 단기 성과를 겨루는 계좌가 아니다. 매년의 수익률보다 중요한 것은 은퇴 이후의 실질 구매력이다. 개별 상품의 우열을 따지기 전에 은퇴 시점과 자금 사용 기간에 맞춘 자산배분 구조부터 점검해야 한다. 연금 성과는 시장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했는지보다 시간이 지나도 유지 가능한 구조를 갖췄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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