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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정부 엘리엇과 ‘3전4기’ 소송전서 승리…1600억 국고유출 막았다

英법원 중재판정 취소소송 승소

정성호 장관 “3% 바늘구멍 뚫었다”

“공단은 국가기관 아냐” 韓정부 주장 인용

수정 2026-02-24 00:06

입력 2026-02-23 21:44

지면 27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을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중재 판정의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것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을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중재 판정의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것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번 판결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기존 중재판정은 효력을 잃었다. 1600억 원에 이르는 국고 유출을 막은 셈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제기한 ISDS 사건 중재판정의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며 “이번 판결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기존의 중재판정은 유지되지 않고 사건은 다시 중재절차로 환송된다”고 밝혔다.

앞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 의결이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따른 것이라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했는데도 주요 주주였던 정부 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이에 찬성해 삼성물산 주주에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23년 6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690억 원과 지연이자 등의 배상을 명령했다. 지연이자를 포함하면 올해 2월 기준 배상금은 1600억 원에 달한다. 엘리엇의 청구 금액(1조 원 이상) 중 7% 수준이다.

정부는 이에 불복해 2023년 7월 영국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2024년 8월 1심에서 각하됐다. 이에 정부는 항소했고 2심 법원인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해 7월 정부 주장 취소 사유는 적법한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1심으로 환송했다.

정부가 제기한 소송의 핵심 쟁점은 ‘국민연금공단이 국제투자분쟁에서 국가배상 책임의 행위주체인 국가기관이냐’는 것이었다. 법무부는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유 가운데 ‘관할 위반’ 문제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고 본 중재판정부의 판단이 당국의 조치와 귀속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와 별도의 법인격을 갖고 있고 연금기금 운용이 국가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 않으며 일상적 의사 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돼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정정 신청부터 취소소송, 항소에 이르는 ‘3전 4기’의 도전 끝에 국민연금공단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받아 기금이 안전하게 운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등 투자 활동이 ISDS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ISDS 제기 요건을 규정한 한미 FTA 제11.1조의 ‘관문 조항’ 기능을 재확인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정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안까지 국제투자 분쟁 대상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면서 해외 투기 자본이 무분별하게 ISDS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막았다는 평가다.

글로벌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연달아 승소하며 국고 유출을 막아냈다는 의미도 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ISDS 중재판정 취소 신청 사건에서도 승소해 약 4000억 원 규모의 배상 책임에서 벗어난 바 있다.

정 장관은 “엘리엇의 6분의 1 수준의 법률 비용만 쓰고도 영국 법원의 중재판정 취소 인용률 3%라는 바늘구멍을 뚫어냈다”며 “2018년부터 8년간 한국의 승소를 위해 한마음으로 헌신한 관계 부처의 공직자들과 정부 대리인단, 이들을 믿어주신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엘리엇이 이와 같은 중재판정 취소소송에 항소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 경우 중재판정부는 영국 법원이 국가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은 국민연금공단을 제외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만을 대상으로 다시 국가의 배상 책임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 영국 법원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한 행위는 FTA 제11.1조 소정의 ‘관련성 있는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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