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안떠도 일단 확보를” 중동 원유선 운임 폭등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에너지 해상운임↑
VLCC ‘중동-亞’ 노선 운임 40만불 돌파
“장기화 땐 50만 달러 곧 찍을 것” 전망
실계약 체결 없지만, 불안심리 반영 급등
“가용 원유선, 비용 안가리고 구하려해”
카타르 등 수출 묶여 저장소 꽉차자 감산
수정 2026-03-04 10:50
입력 2026-03-04 10:47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전 세계 에너지 해상운임이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해역 내 운항이 사실상 중단돼 실제 계약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임에도 화주들의 불안감이 이론상의 일일 운임(스팟) 호가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사태가 장기 용선 비용까지 위협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험료 제공’ 카드를 꺼내 들며 수습에 나섰다.
4일 영국 해양조사분석기관 클락슨스에 따르면 전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평균 스팟 운임 추정가가 하루 35만 달러를 기록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아시아’ 항로는 이미 40만 달러를 넘어섰다. 에너지 전문 보험 중개 기업 파라투스앤파트너스는 지난 2일 기준 VLCC 스팟 운임이 43만8913달러로 1월 초 대비 10배 이상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금액은 원유 인도 가격의 약 14%에 달하는 규모로 1월 기준 4% 수준과 비교하면 대폭 상승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운임 상승이 계속돼 조만간 50만 달러 돌파도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들 수치는 시장 관계자들이 추정한 ‘이론적 가격’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이뤄진 주말 이후 호르무즈 해협 운항과 관련해 실제 체결된 계약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항 선박이 없음에도 호가가 올라가는 것은 선주들이 전쟁 상황을 지켜보며 선박을 붙잡아두려는 심리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중동발 원유를 당분간은 실어올 수 없게 된 화주들이 기존 대비 거리가 먼 산지로 눈을 돌리면 선박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몇 배로 늘어난다. 같은 양의 원유를 가져오더라도 항해 시간이 크게 길어지다 보니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선박이 물리적으로 급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원유를 내릴 곳을 찾지 못한 화주들이 유조선을 부유식 저장소로 활용하려는 수요까지 늘면서 가용 선박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추가 운임 폭등에 대비해 지금 비싸더라도 장기 계약으로 리스크를 미리 고정하려는 심리도 선박 쟁탈전에 불을 지폈다. 해운 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중형 유조선인 수에즈막스의 운임도 공습 후 25만~28만달러로 평시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중동산 대체 원유를 찾으려는 수요가 쏠리면서 비중동 항로 선박 수요와 장기 용선 비용도 함께 치솟는 상황이다.
글로벌 선박 중개 업체인 BRS는 “화주들은 가용 원유선에 대해 운임을 가리지 않고 선박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해역 내 운항이 대부분 보류 상태인 데다 실제 선박 계약 체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현 시점에서 운임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와 장기 전망을 다르게 진단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선박 공급 감소와 보험료 급등이 운임을 더 끌어올리겠지만 봉쇄가 길어지면 고유가로 인한 수요 파괴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하자 미국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에 페르시아만을 지나는 해상 무역, 특히 에너지 수송에 대해 정치적 위험 보험과 금융 보증을 제공할 것을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루스소셜에도 글을 올려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은 전 세계로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가능한 한 빨리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호위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운 고조와 해협 봉쇄로 에너지 생산 중단 및 감산이 잇따르며 불안을 키우고 있다. 카타르에너지는 이란 드론의 라스라판 생산기지 공격으로 안전 위협이 커진 데다 수출길이 막혀 저장 탱크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이라크 역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수출길이 막혀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하루 150만 배럴의 강제 감산을 결정했다. 이라크의 1월 생산량은 하루 400만 배럴 수준이었다. 이라크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유조선이 호르무즈를 통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감산 폭이 하루 300만 배럴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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