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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행정의 조건: 입증책임 전환·파격보상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26-03-04 14:32

김호균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적극행정의 전제 조건을 묘사한 AI 이미지.
적극행정의 전제 조건을 묘사한 AI 이미지.

복합적 위기 환경 속에서 공공부문의 경직성과 무사안일주의는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최대 장애물이다. 최근 정부는 소극행정 병폐를 타파코자 총리실을 중심으로 범부처 적극행정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나아가 기존 최고 등급(S등급)을 상회하는 SS등급 고과 신설을 검토 중이다. 이는 탁월한 성과를 낸 공직자에게 파격적 보상을 제공해 공직사회의 동기부여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정책현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적극행정 면책 제도나 사전컨설팅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대다수 공무원은 사후 감사나 악성 민원, 고소 및 고발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한다. 사전컨설팅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다수의 독자적 적극행정이나 외부의 소송 압박 앞에서는, 여전히 공무원이 고의나 중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현장 실무자들 사이에 열심히 일해봤자 손해만 본다는 냉소와 불신이 팽배한 이유다. SS등급 신설이 과거의 나눠먹기식 평가나 무늬만 혁신인 제도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선진 사례의 성과 관리와 보호 시스템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는 관리자가 적극적인 지휘권과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사법 리스크로부터 공직자를 철저히 보호한다. 법무부가 직접 대리인을 파견해 법적 방어를 지원하며, 공무원이 정당한 업무 수행 중 소송을 당해도 막대한 사비를 들여 방어하지 않도록 국가가 직무 책임보험료의 절반을 예산으로 대신 납부해 주는 등 실질적인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한다. 영국은 성공 프로필이라는 다차원적 평가 체계로 공무원의 능동적 행동 지표를 구체적으로 측정한다. 실패한 결과라도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혁신 의지가 소명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습 문화를 갖췄다. 싱가포르는 국가 경제 지표와 개인의 혁신 기여도를 연동한 파격적인 성과급을 지급한다. 동시에 정치 지도자가 혁신 과정의 위험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강력한 보호막을 제공해 관료제 혁신 엔진을 가동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의 시사점은 적극행정은 일선 공무원의 선의나 희생에 기대어 완성되지 않고. 촘촘하게 설계된 보호망과 확실한 보상 체계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 공공부문이 지향해야 할 적극행정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법 리스크의 근본적 해소다. 공무원이 무과실을 입증하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감사나 수사 기관이 명백한 악의를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 소송 발생 시 국가가 직접 대리인이 되어 방어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다. 둘째, 평가 기준의 고도화다. 영국처럼 결과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과제의 난이도와 혁신적 시도 자체를 평가해야 한다. 실패를 조직의 자산으로 인정하는 정성적 행동 지표 도입이 필요하다. 셋째, 성과와 직결된 구조적 보상이다. 예산 절감이나 신규 세원 발굴 시 이익을 부서와 공유하는 성과 공유제를 도입해야 한다. SS등급 고과자에게는 민간에 버금가는 특별 수당과 승진 우대 등 파격적 인센티브로 실질적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위직이 먼저 혁신의 책임을 지고, 실무자가 징계 두려움 없이 소신껏 일할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다 발생한 실수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탁월한 성과에는 최고의 보상이 따른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적극행정을 통한 국가 경쟁력의 진정한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호균의 K- 행정, 혁신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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