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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과 향후 과제

김후곤 법무법인 광장 대표 변호사(전 고검장)

기업의 ‘안전’ 인식변화 가져왔지만

경영책임자 범위 등 모호 논쟁 불러

법령 정비, 처벌 아닌 예방 이끌어야

수정 2026-03-04 23:48

입력 2026-03-04 18:11

지면 31면

2022년 1월 시행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대한민국 산업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 변곡점이었다. 법 시행 4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냉정하게 중간 점검을 수행해야 한다. 과연 이 법은 목적대로 ‘재해 예방과 생명 보호라는 결실을 맺고 있는가’, 아니면 ‘사고 발생 시 처벌 대상자를 찾기에 급급한 사후 응징의 도구로 머물러 있는가’.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4년간 벌어진 현장의 변화와 법리적 쟁점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가장 고무적인 성과는 경영진의 인식 변화다. 과거 안전보건은 현장 관리자의 부수적 업무로 치부됐다. 하지만 중처법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실태 점검을 경영책임자(CEO)에게 의무화한 데 따라 많은 기업이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했다. 또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전향적인 대응에 나섰다. 안전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ESG)을 결정짓는 핵심 가치로 격상된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 변화 이면에는 모호한 법에서 시작된 치열한 법적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해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 ‘또는’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CSO 선임 시 대표이사의 면책 여부에 대한 해석상 혼란도 야기됐다.

지난 4년간 첨예한 법적 논쟁을 통해 다수의 판결이 쌓여왔다. 그중 올해 2월 의정부지방법원의 삼표산업 사건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재판부는 그룹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경영책임자는 원칙적으로 ‘대표이사’임을 명확히 했다. 대표이사 아닌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인정하려면, 실질적·구체적인 사업 총괄 권한이 입증돼야 하며 대표이사가 중처법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단순히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취지다. 다만 대법원 확정판결 시까지 법적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은 수사 체계의 이중성이다. 사고 발생 시 노동청과 경찰이 동시 수사에 착수하는 구조는 피조사자와 수사기관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두 기관의 수사 속도 차이로 인해 검찰 송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이는 신속한 피해 보상을 저해하고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장기화한다. 수사 정보 공유 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사건 처리가 수년씩 걸리는 현실은 사법 절차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중처법은 우리 사회가 안전한 일터를 위해 지불해야 할 필수적인 투자다. 하지만 법이 명확성을 잃고 추상적인 처벌에만 매몰된다면 기업들은 실질적 예방보다 ‘면피용 문서 작업’에 치중하게 된다. 향후 입법적 보완은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보다 명확히 하고, 경영책임자와 CSO의 책임 한계를 구체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강화하고 이중 수사 구조를 개선해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처벌은 예방을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재발을 막을 것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답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모호한 법령을 정비해 중처법이 진정한 ‘산업 현장의 안전과 생명 보호의 보루’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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