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피의자 신상공개, 지역 따라 들쭉날쭉…“기준 재정비 필요”

최근 5년간 신상공개 전국 총 39명

서울 17명·대전 5명 등 지역 격차

사안 따라 시도청 심의 결과 제각각

심의제도 정비 필요…“투명성 제고”

입력 2026-03-09 06:00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남성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김모 씨가 지난달 12일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남성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김모 씨가 지난달 12일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북구 모텔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의 신상 공개 여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의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이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신상 공개 기준이 주관적 해석의 영향을 받고 지역별 차이도 큰 만큼 기준을 더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5년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3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서울경찰청이 공개를 결정한 피의자가 17명으로, 전체의 약 44%를 차지했다. 전국 공개 사례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에 집중된 셈이다. 대전이 5명으로 그다음으로 많았고, 충남·경기북부·경기남부·인천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광주·울산·세종·전북·경남 등 5곳은 최근 5년간 신상공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부산과 대구 등 대도시 역시 같은 기간 공개 사례가 각각 1건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서울의 범죄 발생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지역별 공개 결정의 격차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에 따르면 피의자 신상공개는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및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법적 요건이 명시돼 있음에도 실제 공개 여부는 각 시도경찰청에 설치된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위원회는 보통 경찰 내부 인사와 법조계·학계 전문가 등 7명으로 구성되지만, 사건마다 위원 구성과 심의 분위기가 달라 동일한 기준이라도 사안마다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사건을 담당한 관할 경찰서가 1차적으로 신상공개심의위원회 회부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가 지역 간 편차의 원인으로 꼽힌다.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심의위원회 개최 자체가 좌우되기 때문에 지역별로 사실상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각 지역별 위원회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적 한계가 SNS 등을 통한 피의자 정보의 무분별한 확산, 이른바 ‘사적 제재’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강북구 모텔 연쇄살인 사건은 수사 초기부터 구체적인 범행 정황이 알려지며 큰 공분을 샀는데, 이 과정에서 피의자의 성별·얼굴·나이·학력 등 신상 정보가 수사 단계에서부터 온라인에 퍼지며 논란이 일었다. 피의자의 중대 범죄 혐의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까지 덧붙여 신상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은 인권 침해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각 경찰서에서 1차적으로 신상공개 여부와 심의위원회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데, 현행 규정이 주관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어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강력범죄의 경우 피해자나 시민단체가 신상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위원회 판단에 대한 신뢰성과 독립성이 담보되지 않아 온라인 사적 제재가 확산되고 있다”며 “신상공개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등 일부 국가처럼 살인 등 중대 범죄의 경우 일정 요건 아래 피의자 신상을 전면 공개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채 의원은 “신상 공개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만큼 심의 기준을 구체화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고삭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