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유턴 핵심은 AI 일자리다
지원금 확대만으론 근본 처방 안 돼
AI 인재 순유입률 세계 최하위 수준
대형 프로젝트로 평생 일터 만들어야
입력 2026-03-08 17:51
지난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 중 서울대 박사 과정 학생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국내 학부를 졸업하고 해외로 나가지만 자신은 해외 학부를 마치고 국내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소개했다. 이 학생은 “내 연구 결과가 한국 것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국인의 연구 성과가 해외 업적이 되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이 장면을 보고 지난해 말 미국에서 열린 인재 유치 행사가 떠올랐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이민 단속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인재까지 불러들이겠다는 구상이었다. 정부 기관과 기업들은 부스를 차리고 구직자들에게 한국에서 기회를 찾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현장에서 만난 유학생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졸업 후 한국으로 가겠느냐’는 질문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더 많은 기회와 보상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애플·구글·메타·테슬라·오픈AI·앤스로픽 등 인공지능(AI) 선두 주자들이 모두 미국에 있고 중국·인도 등 각국에서 모인 인재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다. 연봉은 2~3배 많고 창업 아이템만 좋으면 돈을 댈 투자자가 즐비하다.
학업 조건도 좋다. 미국은 이공계 장학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석박사 통합이나 박사 과정에서 등록금 수천만 원을 면제받는다. 연구조교(RA)나 교육조교(TA)에게 매달 2000~3000달러씩 생활비도 준다. 하버드대 박사 생활비는 월 4200달러가 넘고 예일대는 18세 미만 자녀를 둔 박사 과정 학생에게 매년 7500달러를 보조한다.
미국이 아무리 비자 장벽을 높여도 해외 연구와 취업 수요는 식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AI 인재 순유입은 인구 1만 명당 -0.36명(순유출)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내 최고 대학으로 불리는 서울대조차 2025학년도 전기 이공계 대학원 모집에서 75%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 결과 해외 이주를 계획 중인 내국인 박사 취득자가 2023년 592명, 2024년 658명, 2025년 709명으로 증가세다.
이 대통령은 “해외 인재 유출 문제는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해외 인재 환류를 위한 정책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2026년 말부터 5년 동안 매년 20명씩 국가과학자를 선정해 매년 1억 원의 연구활동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인재 유출 원인이 처우 문제에 있다고 보고 지원 확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처우가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정도로는 근본적 처방이 되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태극기로 도배하면서 유혹하는데 지원금이 아까워 한국에 남을 인재는 많지 않을 것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큰 무대를 경험하고 싶어 나간 청년들의 유턴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아무리 보상을 높인다고 한들 백지수표를 내미는 중국을 넘어설 수도 없다.
인재 유턴의 핵심은 결국 괜찮은 일자리다. 지금은 미국에서 배운 AI 기술을 실현할 대형 프로젝트는 다시 미국이 흡수해버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고연봉 일자리가 많은 만큼 해고도 쉬운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해외 인재들에게조차 보이지 않는 국경의 벽이 높아졌다.
사실 실리콘밸리에는 졸업을 앞둔 유학생이든, 빅테크에서 10년 넘게 일한 중견 개발자든 마땅한 일자리만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인재들이 있다. 내 연구 결과가 한국 것이 되었으면 하는 열망도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가 1년에 1억 원을 지급하는 단발적인 지원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AI 기반 슈퍼컴퓨터와 클러스터 조성 등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평생 직장을 만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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