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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로 빚은 장대한 폭포…겸재 붓끝에서 피어나다

■국중박, 정선 품고 서화실 새단장

탄신 350주년…시즌제 첫 주인공으로

박연폭포·신묘년풍악도첩 한 자리에

한호 글씨·김명국 ‘달마도’ 등도 전시

김홍도·김정희 등 특별전으로 이어져

수정 2026-03-09 23:46

입력 2026-03-09 17:37

지면 26면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가파른 절벽에서 장대한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좌우 절벽의 짙은 수풀이 하얀 폭포수와 대비를 이룬다. 층층이 먹을 겹쳐 칠해 폭포 물살 주위 암벽의 거친 물성을 표현했고, 내리쏟아지는 물살의 결들은 마른 먹붓질로 담아냈다. 폭포수 아래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들이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조선 진경산수 명작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1676~1759년)의 ‘박연폭포’다.

올해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맞아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라는 주제로 겸재가 그린 주요 작품 12점이 전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새롭게 단장한 ‘서화실’ 주제 전시를 통해 그의 초기작과 노년의 걸작을 모았다. 특히 한 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걸작들을 모아둔 점이 눈길을 끈다. 겸재가 35살 때 금강산을 찾아가 그린 13점의 그림들 연작집인 ‘신묘년풍악도첩’의 주요 작품들과 70살 넘은 노년기에 그린 ‘박연폭포’의 실물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마주 보며 내걸렸다. ‘신묘년풍악도첩’은 현재까지 알려진 정선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여겨진다. 30대에 금강산을 여행한 뒤 그린 그림을 모은 이 화첩은 대중에 잘 알려진 작품과 비교하면 화풍이나 필치가 다르지만,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반면 말년에 그린 ‘박연폭포’는 자신감 넘치는 붓질과 강약 대비로 절정의 필치를 드러낸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정선의 대표작을 꼽을 때 ‘금강전도’ ‘인왕제색도’와 함께 ‘박연폭포’가 거론된다”며 “특히 ‘박연폭포’는 70대에 이르러 필력이 무르익은 정선이 필법과 묵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남긴 불멸의 명화”라고 소개했다. ‘박연폭포’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까닭에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없는데 다행히 이번 전시를 위해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개관한 서화실 모습. 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개관한 서화실 모습. 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간 서화실 작품들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왔다. 유 관장은 “서화실 작품은 보존을 위해 빛 노출을 제한하는 원칙에 따라 3개월마다 교체해왔으나, 그간 교체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전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시즌제’를 도입했다. 분기별로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대표 서화가를 집중 조명하는 주제 전시를 열고, 시즌마다 반드시 봐야 할 작품 2~3점을 선정해 ‘이 계절의 명화’라는 이름으로 집중 조명하는 것이다.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모습. 사진 제공=국가유산청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모습. 사진 제공=국가유산청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영석의 ‘설중방우도’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영석의 ‘설중방우도’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시즌에는 관아재 조영석의 ‘설중방우도’도 선보였다. 조영석은 겸재의 오랜 친구로 알려져 있다. 겨울 밤 눈길을 헤치고 벗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 속 모습이 조영석과 정선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 고사를 소재로 삼았지만, 인물은 조선풍 옷차림으로 그려 재해석했다는 평가다.

한국 서화사를 대표하는 글씨도 만날 수 있다. 17세기 흘림체인 초서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윤순거의 글씨, 석봉 한호의 노년기 글씨를 모은 ‘석봉진적첩’ 등이 만날 수 있다.

그림으로는 김명국의 ‘달마도’, 당대 최고의 화원인 이명기와 김홍도가 함께 제작한 ‘서직수 초상’ 등을 볼 수 있다. 2005년 용산 개관 이후부터 서화실을 지켜온 ‘터줏대감’ 태자사 낭공대사 비석 너머로는 옛 비석의 다양한 글씨가 벽면을 가득 채운다.

김명국의 ‘달마도’ 모습. 연합뉴스
김명국의 ‘달마도’ 모습. 연합뉴스
한석봉의 글씨를 모은 ‘석봉진적첩’ 모습. 연합뉴스
한석봉의 글씨를 모은 ‘석봉진적첩’ 모습. 연합뉴스

새로 단장한 서화실을 알리기 위해 유 관장도 적극 나섰다. 유 관장은 2001년 출간했다가 2009년 절판한 자신의 대표 저서 ‘화인열전’의 수정·증보판을 최근 내놓으면서 겸재 정선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유 관장은 10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겸재 정선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갖는다.

시즌제의 메인 인물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겸재 정선 이후에는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5월 4일∼8월 2일),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8월 10일∼11월 29일), ‘조선 모더니즘: 조선 말기의 회화’(12월 7일∼2027년 2월 28일)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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