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4대 은행, 석화·해운·항공 대출 29조 “환율보다 유가가 더 걱정”
[이란發 유가 급등에 대응책 분주]
유가·환율영향 상세히 분석하고
결제만기 연장 등 지원방안 검토
금감원은 시중銀 외화자금 점검
입력 2026-03-10 07:00
국내 금융권이 국제유가 영향을 크게 받는 석유화학·항공·해운업에 대한 여신 점검에 나섰다.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업황이 출렁이는 만큼 사전에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4대 은행들은 환율·금리보다 국제유가 변동성을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석유화학·항공·해운·건설 등 주요 업종에 대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영향을 점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란 사태 초반까지만 해도 시장 지표를 단순 모니터링하는 수준이었으나 이날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자 개별 기업 영향을 상세히 분석하기로 한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국제유가 상승과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시중은행의 한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는 “국제유가나 중동 수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큰 기업들은 개별 점검하고 집중 관리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부행장도 “유가 등락 영향을 많이 받는 석유화학·항공·해운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국제유가 급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업 여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4대 은행은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석유화학·항공·해운 기업에 대해 대출 잔액 29조 567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합성수지·비료 등을 만드는 ‘화학제품 및 화학물질 제조업(의약품 제외)’이 22조 6092억 원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석유화학 기업에 대한 집중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 석유화학은 업황 부진 장기화로 유가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더라도 이를 판매 가격에 전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사태 발생 9일 만에 나프타 가격이 28% 오르면서 수익성에 영향을 받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나프타의 80%를 중동에서 조달하는 만큼 직접적인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시중은행들은 이란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대비해 기업 지원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결제 만기를 연장해달라는 요청이 발생하면 지점장이 본부를 거치지 않고 신용등급에 따라 즉각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유연화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운전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날 시중은행들은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했다. KB국민은행은 고객 포트폴리오 손실 최소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후 점검에 나섰고 신한은행은 고객 자산관리 유관 부서 협의회를 통해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방안을 실행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거시경제 지표 변동에 따른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우리은행도 내부 기준에 따라 익스포저 점검, 포트폴리오 관리 강화 등 필요 조치를 단계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이 채권시장 불안이 확대될 경우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우선 가동하고 이후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국고채·외화채 매입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유가·환율·금리 상승이 장기화하면 기업 부실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며 “당국이 당분간 시장 상황을 지켜보다가 채권 매입을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11일 은행 담당 부원장보 주재로 주요 시중은행의 외화 자금 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외화 자금 조달 여건과 시장 상황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고환율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인 외화 유동성 관리에 나선 것이다.
시중은행들도 원·달러 환율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환율 상승에 따른 보통주자본비율(CET1) 영향을 시뮬레이션하고 외화 자산과 파생상품 등 환율 민감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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