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한미 가교 역할 약속 지켜야
입력 2026-03-10 18:22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석 달이 흐르면서 초기의 격앙된 분위기는 가라앉고 있다. 사건 초기 정부는 ‘마피아 소탕’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쿠팡을 향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렀지만 지금은 속도를 조절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쿠팡 사이 치열했던 ‘진실 공방’도 피로감 속에 묻혀가고 있다.
‘탈팡(쿠팡 탈퇴)’ 흐름도 둔화됐다. 국회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회원 탈퇴 방법까지 알려주며 매질을 했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발길은 최근 다시 쿠팡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3월 기준 쿠팡의 평균 일간 활성이용자수(DAU)는 1647만 766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잠시 1500만 명 선이 깨지기도 했으나 이내 회복한 셈이다.
모든 것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전의 침착함을 찾아가고 있지만 한미 관계에는 예상하지 못한 상흔이 남았다. 정부가 쿠팡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자 쿠팡은 ‘미국 기업’이라는 국적을 앞세워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외교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법인 임시대표는 지난달 미 연방 하원 비공개 조사에 출석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 대우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설립 초기 부터 쿠팡을 지원했던 투자사들도 한국에 대해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해달라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청원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어느덧 한미 통상 문제가 됐다.
다행히 최근 쿠팡 투자사들이 USTR에 한국 정부의 조치를 문제 삼는 청원을 철회하면서 최악의 국면은 면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는 깊다. 한미 양국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민간 기업의 보안 사고가 외교적 걸림돌이 되는 현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쿠팡은 한미 관계를 자극하기보다 한국 소비자 신뢰 회복에 무게를 둬야 한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쿠팡에 있어 고객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보다 심각한 일은 없다”며 사과했다. 실제로 쿠팡 매출의 80% 이상은 한국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런 쿠팡이 한미 관계에 불필요한 갈등을 낳는다면 그 부담은 결국 한국 시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쿠팡이 ‘최우선’이라 언급한 한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쿠팡의 역량을 활용하면 오히려 한미 관계 강화에 기여할 기회도 있다. 쿠팡은 지난달 미국 하원 청문회 직후 “(쿠팡이) 미국과 대한민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의장이 쌓아온 ‘하버드 인맥’과 ‘글로벌 대관 역량’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쿠팡은 한미 가교 역할 약속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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