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인재철학
입력 2026-03-10 18:34
서정명
논설위원
“의심되면 쓰지 말고(의인물용·疑人勿用), 쓰면 의심하지 말라(용인물의·用人勿疑).”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인재 철학이다. 직원 채용 때는 당대 최고의 관상가 제산 박재현을 면접장에 동석시키기도 했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가끔 헬기를 타고 제산을 만나러 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와 인연을 맺었다. 제산은 1972년 유신(維新)을 계획한 박정희 대통령이 조언을 구하자 담뱃갑에 유신(幽神·저승 귀신)이라고 적어 보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지만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면접장에 동석한 제산은 이 창업회장에게 관상과 사주를 본 인물평을 건넸고 이는 인재 선발에 십분 활용됐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인재 경영도 남달랐다. 이 선대회장은 2002년 6월 ‘S급 인력 확보’ 사장단 회의에서 “삼고초려해서라도 좋은 사람 모셔와라. 한 사람이라도 모셔 오면 큰일 하는 거다. 그럼 내가 박수를 쳐주겠다”고 했다. 사장단 인사 평가에서 인력 양성 비중을 40%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1명의 인재가 1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며 삼성이 ‘두뇌 천국’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계열사 사장들이 “앞으로 이런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고 보고하면 그의 일성은 “사람은 있고?”였다. “지금부터 구해볼까 한다”고 대답하면 “사람 없이 무슨 사업이냐”고 불호령을 내렸다.
국내 주요 대기업 중 유일하게 신입 공채 제도를 유지하는 삼성이 10일부터 상반기 채용에 들어갔다. 1957년 도입된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는 7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다른 대기업들이 수시·경력 채용에 나서는 것과 대조적이다. 주요 경쟁국은 지금 ‘인재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과 중국은 블랙홀처럼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고 일본은 인공지능(AI) 인재 순유입국으로 돌아섰다. 한국의 인재 유치 매력도는 2020년대 들어 세계 30~40위에 그치고 있고 AI 인재는 순유출 상태다. 삼성가(家) 인재 철학이 우리 경제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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